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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도의 퍼스펙티브] ‘시계 제로’ 이란 정국…세속적 민주주의 요구 봇물

중앙일보

2026.02.0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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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고물가로 불붙은 이란 시위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지난해 10월 축구장 270개 크기의 세계 최대 쇼핑센터 이란몰(Iran Mall)을 지은 이란의 아얀데(Ayandeh) 은행이 파산했다. 이 은행은 금융위원회에서 상한선으로 막아 놓은 이자보다 무려 4%포인트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하면서 수신고를 늘렸다. 다단계 영업(Ponzi scheme)과 매우 유사하게, 꾸준히 들어오는 신규 예금으로 초기 투자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했다. 그 결과 2013년 출범한 아얀데 은행은 2017년 이란 내 은행 예금액의 7.6%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더 큰 문제는 막대한 자금을 주로 부동산에 투자했다는 점이다. 대출금 중 약 70%를 아얀데 은행이 전액 출자한 자회사 이란몰 개발사에 제공했다.

다단계 영업으로 부동산 투자한 아얀데 은행 파산, 부정부패 의혹 확산
경제 제재 겹치며 이란 화폐가치 급락, 달러 환율 10년 만에 44배 급등
전자상가 상인들이 반정부 시위 앞장…정부의 강경 진압에 희생자 속출
트럼프, “시위대 지원” 내세워 군사행동 시사…이란, 확전 가능성 경고

지난달 9일 테헤란 도심에 모인 시위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고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얀데 은행은 핵협정이 타결돼 외국인 투자가 몰려오면 수익 창출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이란몰을 지어 2018년 문을 열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같은 해 5월 8일 이란과 맺은 핵협정에서 탈퇴하고 경제 제재를 다시 부과하면서 아얀데 은행은 파산의 늪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결국 지난해 10월 아얀데 은행은 문을 닫았고, 부채는 550경 리알(약 51억 달러)에 이르렀다. 아얀데 은행의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면 이란 정부가 국영은행을 통해 막대한 돈을 찍어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경고대로 인플레이션의 재앙이 다가왔다. 이란 중앙은행은 아얀데 은행의 부정부패 규모를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아얀데 은행 뒤에 막강한 권력 엘리트가 있기 때문이라는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고환율에 수입 물가 급등
때는 늦었다. 지난해 10월과 11월 이란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50%에 달했고, 미국 달러에 대한 이란 리알화 환율은 역대 최고 수준을 경신하기 시작했다. 2015년 7월 20일 핵협정이 이뤄졌을 당시 1달러를 3만2370리알에 살 수 있었는데, 지난해 12월 28일에는 143만2000리알을 내야만 했다. 무려 44.2배가 뛰었다. 우리 돈으로 치면 과거 1400원을 내면 살 수 있던 1달러를 6만1880원에 사야 한다는 말이다.

널뛰는 환율에 전자제품을 수입하는 상인들이 가장 많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서울로 치면 용산 전자상가라고 부를 수 있는 테헤란의 알라에딘과 차하르수 전자상가 상인들이 가장 싼 휴대전화마저도 가격이 부담스러워 사러 오는 사람이 없는 현실을 더는 참을 수 없다면서 지난해 12월 28일 각각 상점문을 닫고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란에서 가장 큰 테헤란 대(大) 바자르(Bazar)의 상인들도 동조하며 나섰다. 놀란 정부는 상인들을 어르고 달랬다. 정부의 경제 실책을 인정하며 중앙은행 총재를 교체하고,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 대화를 하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우대 환율을 없애 자유시장 환율로 통일하고, 전 국민에 매달 1000만 리알씩 넉 달 동안 주겠다는 대책도 내놓았다.

2018년 이란의 루하니 정부는 경제 제재에 따른 환율 부담을 이기기 위해 환율에 격차를 두는 정책을 폈다. 당시 필수품 수입에는 1달러에 4만2000리알, 2차 상품 수입에는 8만~9만 리알로 하고 그 외에는 시장에 환율을 맡겼다. 그 후 2차 상품 수입 환율을 없애고 필수품 수입 환율과 자유시장 환율을 위주로 작동 중이었다. 시위 발생 당시 필수품 수입 환율은 28만5000리알이었다. 가뜩이나 높아서 힘들었던 자유 시장의 환율은 지난해 9월 유럽 국가들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복원하면서 더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는 더는 못 살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으로 경제가 몰렸다.

친정부 상인들도 경제 실정 비판
1979년 이란 혁명이 성공한 이래 크고 작은 시위가 있었지만, 상인들이 주도한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상인들은 어지간하지 않으면 시위에 가담하지 않는다. 정국이 안정돼야만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 수 있기에 대체로 친정부적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경제 실정을 꼬집으며 거리로 나섰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더욱이 1979년 이란 혁명의 주역이 바로 상인들이었기에 정부가 느끼는 심적 부담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다. 그래서 정부는 한껏 자세를 낮추고 상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며 환율 및 보조금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 권력층의 부패를 적발해 처벌하겠다는 약속이 빠졌다. 환치기로 돈을 번 사람들을 말로라도 혼내주겠다는 대책이 없었다. 전 국민에게 넉 달 동안 매달 1000만 리알을 보조금으로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실제 물가를 보면 화가 날만 하다. 시위 발생 두 달 전인 지난해 10월 달걀 30개들이 한 상자가 198만 리알이었다. 그것도 130만 리알에서 오른 가격이었다. 그런데 지난달에는 500만 리알로 올랐다.

이슬람의 예언자와 시아파 이맘이 빵과 대추야자를 먹고 살았다고 배웠기에 이란 사람들이 ‘예언자와 이맘의 음식’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대추야자 700g짜리 한 상자는 지난해 10월 가격으로 376만 리알이었다. 지난해 이란의 최저임금이 월 1억400만 리알이니 대추야자 27상자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정부 보조금 1000만 리알로는 대추야자 세 상자도 채 살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 1일 튀르키예 이스탄불 주재 미국 영사관 밖에서 이란 정부를 지지하는 반미·반이스라엘 집회 도중 시위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포스터를 불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슬람 공화정 향한 반감 확산
상인들의 항의를 정부가 달래는 동안 불똥이 정치적 시위로 튀었다.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반(反)정부성 분노가 터져 나왔다. 처음 한 주는 시위대 규모가 2022년 히잡 반대 시위보다 작았으나 해외 반정부 세력이 가담하면서 커지기 시작하더니 트럼프 대통령이 도와주겠다는 말이 나오면서 점차 이란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란 혁명 이후 최초의 시위는 1999년 7월 테헤란대 학생들이 개혁파 신문 살람 폐간에 항의하면서 일어났다. 혁명 이후 태어난 세대가 처음으로 정부에 반기를 든 시위였다. 진압경찰과 민병대는 시위 학생들을 테헤란대 기숙사 창밖으로 내던지면서 무력 진압을 서슴지 않았다. 이때 학생들은 “하메네이 퇴진”이라는 구호를 처음 외치고 “내 형제를 죽인 자를 죽일 것이다”라고 분노를 표했다. 이들은 “대포·탱크·기관총은 아무 소용없다”라고 목청을 높이고 “죽어도 굴욕은 참지 않는다”며 항의했다.

2009년에는 대통령 선거 부정에 항의하면서 “내 표는 어디에”라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다. 2017년과 2019년에는 유가 보조금 삭감과 경제난에 분노한 시민들이 정부와 체제에 항거하는 시위를 벌였다. “개혁파여, 강경파여, 게임은 끝났다”며 이슬람 공화정 자체에 반대하는 심정을 드러냈다. 특히 “사람들은 구걸하고 성직자는 신처럼 군다”라는 시위 구호에서 볼 수 있듯 이슬람 지도자를 향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급기야 “우리는 이슬람 공화정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국민보다는 팔레스타인 해방에 더 마음을 쓰는 이슬람 체제를 향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1979년 혁명으로 막을 내린 파흘라비 왕조를 세운 레자 샤의 이름을 부른 시위대의 목소리가 압권이었다. 성직자들의 특권을 막고 정부 통제 아래 둔 레자 샤를 기억하면서 “레자 샤여, 편히 잠드소서(레자 샤 루하트 샤드)”라고 외쳤다. 이슬람 정부가 몰아낸 왕정을 세운 왕의 이름을 부르며 이슬람 공화정이 싫다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미국은 시위 빌미로 핵 차단 노려
2022년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으로 시작한 히잡 반대 시위의 대표적 구호는 “여성·삶·자유”였지만, “시위가 아니라 혁명이다”나 “압제자에게 죽음을, 왕이든 최고지도자든”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체제를 무너뜨리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열정이 담겼다. 그런데 지난해 시위대는 미국에 있는 레자 파흘라비를 향해 “왕이여 영원하라(자비드 샤)”를 외쳤다. 레자 파흘라비를 불러 왕이나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마음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슬람 민주주의가 아니라 세속적 민주주의를 해보겠다는 갈망의 표현이다.

이란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의 불씨는 꺼졌다. 외국 세력이 조장한 폭동이냐, 아니면 순수한 민주주의 시위냐, 사망자가 3117명이냐, 4만3000명이냐, 아니면 더 많냐를 두고 입씨름을 벌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지원하겠다면서 지난달 14일에 이어 현재도 이란에 대한 공격 자세를 풀지 않고 있지만, 시위대를 도와 이란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마음보다는 시위를 빌미로 이란의 핵 개발 야심을 끊어 놓겠다는 계산이 앞선다. 이란은 미국이 공격하면 중동 전쟁으로 번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2026년 2월 3일 현재 시계 제로의 이란을 보고 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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