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검은 월요일’을 맞았다. 코스피는 5000대 아래로 내려왔고, 원-달러 환율은 25원 가까이 치솟으며 1460원대로 올라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매파적 비둘기’란 이중적 별칭을 가진 케빈 워시를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 지명한 후 촉발된 불확실성이 아시아 시장 전반을 덮쳤다.
2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274.69포인트(5.26%) 하락한 4949.67에 마감했다. 하루 기준 최대 낙폭에, 코스피가 5000선 밑으로 간 것은 지난달 26일 이후 5거래일 만이다. 이날 장중엔 변동성이 커져 ‘매도 사이드카’도 발동됐다. 낮 12시31분 코스피200 선물이 전 거래일 대비 5%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 넘게 지속되며 프로그램 매도 주문이 일시 정지됐다. 코스닥 지수도 51.08포인트(4.44%) 내린 1098.36으로 장을 마쳤다. 코스피에서 227조원, 코스닥에서 28조원 등 국내 증시에서 약 255조원에 이르는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코스피 5000과 코스닥 지수 1000 돌파 ‘축포’를 떠트리고 불과 6~7일 만에 맞은 역풍이다. 이날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2조5323억원, 2조2128억원을 팔아치웠다(순매도). 개인투자자가 4조5873억원을 사들였지만(매수 우위), 지수를 떠받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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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월요일’ 아시아 증시 비명
…한국 -5.26% 최대 타격
이날 코스피 개인 순매수는 ‘동학개미운동’이 정점에 달했던 2021년 1월 11일(4조4921억원)을 뛰어넘는 역대 최대 규모였지만 지수 추락을 막지 못했다. 이날 삼성전자(-6.29%), SK하이닉스(-8.69%) 등 반도체 대형주뿐 아니라 증시 전반에 일제히 파란불이 켜졌다.
‘워시 쇼크’는 아시아 증시로 번졌다. 일본 닛케이225는 이날 1.25% 하락해 마감했고 중국 상하이, 홍콩 항셍, 대만 가권지수도 1~2%대 내리며 동반 약세를 보였다. 아시아 주요국 증시 가운데 한국 코스피의 낙폭이 가장 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목한 워시 전 Fed 이사는 금리 인하에 문을 열어두면서도(비둘기파), 유동성 관리에는 엄격한 태도(매파)를 보여온 인물이다. ‘매파적 비둘기’라 불리는 그에 대한 시장의 판단은 엇갈리고 있다. 정책 방향성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도 시장의 불안을 키웠다. 시장에선 워시 후보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임명 취지대로 기준금리를 낮추더라도 시중에 풀린 돈을 흡수하는 대차대조표 축소(QT)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워시 후보자는 과도한 유동성이 경기를 부양하기보단 자산 가격을 왜곡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아시아 시장 급락의 출발점은 경기나 기업의 기초체력이 아니라 금과 은의 급락으로 촉발된 담보 부족과 레버리지 구조의 붕괴로 추정된다”며 “특히 그동안 상승이 컸던 반도체 종목 중심으로 외국인의 공격적인 매도세가 지수 하락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빚을 크게 내 투자했다가 추가 증거금을 내라는 요구(마진콜)를 받은 투자자들이 주식과 지수선물, 가상자산 등 ‘무차별 던지기’에 나며 시장 충격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도 하루 새 20원 넘게 급등하며(원화값 하락) 요동쳤다. 주간 거래에서 전 거래일보다 24.8원 오른 1464.3원에 마감했다. 주간 종가 기준으로 지난달 23일(1465.8원) 이후 가장 높다. 하루 변동 폭도 올해 들어 가장 컸다. 달러 가치가 오르고,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을 팔아 치우면서 원화값도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2일 오전 2시(미국 동부시간) 97.17로 전 거래일(96.99)보다 약 0.2% 상승했다. 워시 후보자 지명 전인 지난달 27일 장중 95.55까지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빠른 반등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달러 강세 되돌림이 나타났다”며 “한동안 외환시장은 강달러 압박 영향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