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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또 아름답고, 또한 아름답다…시 쓰는 피겨선수 [2026 동계올림픽]

중앙일보

2026.02.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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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현겸은 지난해 시집을 출간한 ‘은반 위의 시인’이다. 동계올림픽 프리스케이팅에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OST에 맞춰 감미로운 연기를 펼친다. [사진 대한체육회]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무대를 밟는 김현겸(20·고려대)은 빙판 위를 지치며 시를 쓰는 은반 위의 시인이다. 3년 동안 틈틈이 써 내려간 시들을 엮어 시집 『맑은 하늘에 비가 내리면』을 지난해 세상에 내놨다.

그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시보다는 그날그날의 감정과 생각, 불현듯 떠오른 발상을 기록한 글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어 “책을 낸 이유는 ‘피겨 선수’라는 타이틀 뒤에 숨겨진 인간 ‘김현겸’의 모습을 한 꺼풀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최대한 수정 없이 원문 그대로를 실어 날것의 느낌이 강하지만, 저에게는 소중한 첫 도전이었기에 미숙한 부분까지 가감 없이 드러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글과 책, 국어 과목을 유난히 좋아했던 소년 김현겸은 축구를 하러 나섰다가 우연히 들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취미로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것이 선수의 길로 이어졌다. 열일곱 살이던 2023년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이듬해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는 남자 싱글과 단체전에서 2관왕을 달성하며 한국 피겨의 미래로 우뚝 섰다.

시련도 있었다. 지난해 하얼빈 아시안게임 쇼트프로그램 도중 발목 부상을 입은 데다 장염까지 겹치면서 프리스케이팅을 기권해야 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고 올림픽 추가 출전권을 따냈고, 지난달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차준환과 함께 밀라노행 티켓을 땄다.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현겸은 지난해 시집을 출간한 ‘은반 위의 시인’이다. 동계올림픽 프리스케이팅에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OST에 맞춰 감미로운 연기를 펼친다. [사진 대한체육회]
지난달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17위에 머물렀던 경험은 그에게 뼈아픈 교훈이자 자양분이 됐다. 이번 올림픽에서 그는 자유로운 감성을 극대화한 콜드플레이의 ‘Paradise’를 쇼트프로그램 음악으로 택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OST에 맞춰 이국적인 아랍풍의 선율 위에서 예술성을 펼칠 예정이다.

그는 올림픽이 끝난 뒤 밀라노에서 보고 느낀 감각들을 녹여낸 두 번째 시집을 낼 계획이다. 김현겸은 “1집이 내면의 감정과 개인적인 상황에 집중했다면, 2집은 세계와 현상, 나라는 존재를 최대한 배제한 채 사회와 군집을 다루는 것이 목적”이라며 “지금까지 써 내려간 내용들이 꽤 만족스러워 벌써부터 설렌다”고 전했다.

그가 가장 경외하는 문장가는 시인이자 소설가, 건축가였던 ‘이상’이다. 그는 “일상 속에서도 『오감도』와 소설 『날개』의 문장들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고 말했다. 피겨와 시의 공통점을 묻는 질문에는 “아름다움, 또 아름다움, 또한 아름다움”이라는 짧고도 강렬한 대답을 내놓았다.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현겸은 지난해 시집을 출간한 ‘은반 위의 시인’이다. 동계올림픽 프리스케이팅에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OST에 맞춰 감미로운 연기를 펼친다. [사진 대한체육회]
‘어질게 겸하라’는 뜻의 이름 현겸은 검도인인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에게 올림픽 메달은 소중한 목표지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는 “태극마크의 무게는 언제나 남다르지만 올림픽은 확실히 더 벅찬 구석이 있다”면서도 “세상에 나를 알리는 일도 뜻깊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평소의 행실과 선행이 올림픽의 영광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믿는다”고 성숙한 가치관을 드러냈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앞둔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시 한 구절’을 부탁하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이렇게 답했다.

“새 생명이 돋듯 피어난 날개는 찬란하진 않을지언정 수수히 휘날린다 무릎을 웅크리고 도약하여 다시금 날아오르리라.”





박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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