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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후루 유행창업 뒤 폐업…대출 권한 건 정부였다 [무너지는 K자영업]

중앙일보

2026.02.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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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에 기댄 ‘묻지마 창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배경엔 낮은 창업 장벽과 제도의 허점이 있다. 일례로 설탕 시럽을 바른 과일 사탕 탕후루 가게는 2023년에만 150곳(행정안전부 통계)이 새로 문을 열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2년 만에 사실상 종적을 감췄다. 폐업한 탕후루 점포는 2024년 620곳, 지난해 380곳에 이른다. 지난 10년 간 대왕카스테라, 흑당버블티 등 특정 먹거리 유행때마다 반복돼 온 현상이다.

한 탕후루 가게. 유행에 편승해 우후죽순 생겼다가 잇따라 폐업했다. 중앙포토
더 큰 문제는 창업 때 빌린 돈이 굴레가 되는 상황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선 정부가 이런 악순환을 방치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자영업자 정책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의 올해 소상공인 예산이 5조4000억원인데, 이 중 약 62%인 3조3620억원이 대출(정책자금) 지원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승연(52)씨는 2021년 코로나19 당시 정부 지원으로 1%대 초저금리 대출을 받았지만, 이후 금리가 3% 중후반대로 뛰었다. 그는 “당시 5000만원을 빌렸는데 체감 경기는 더 나빠져 아직 절반도 갚지 못했다”며 “매월 원리금으로 100만원씩 나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대출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폐업 시 대출금(정책자금) 상환을 일시 유예해주고 있지만, 폐업 이후 빚을 갚을 길이 막막한 데다 폐업 비용 자체도 큰 부담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폐업 자영업자 82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 폐업을 결심했을 당시 부채액은 평균 1억236만원이었으며, 폐업 비용은 평균 2188만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스1
지원 사업은 방대한데, 관리와 내용은 부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의 소상공인 지원 사업은 1000개가 넘고, 창업 지원부터 경영 개선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중기부는 자영업 포털사이트인 ‘소상공인24’에서 지원 사업을 안내하고 있지만, 전체 자영업자 10명 중 4명이 60세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활용이 쉽지 않다. 지자체·기관별 지원 사업은 신청 창구가 분산돼 공무원들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중기부가 제공하는 지원 사업 안내 책자는 수백 페이지에 달해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탁상행정”이란 불만이 나온다.

경기 군포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주성하(60)씨는 “지원 종류를 제대로 알기 어렵고, 신청 절차도 복잡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실제 경영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를 돕는 ‘재기사업화’의 경우 지난해 신청 건수 1만1067건 중 60대 이상 비중은 11.5%에 그쳤다. 이에 대해 중기부 관계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제도 안내와 신청 과정을 고도화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시장에 민생회복 소비쿠폰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창업 단계부터 지원책 전반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이상백 경기도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자신의 업종 관련 교육을 이수해야 창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진입장벽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은 전문가가 재무 자료를 토대로 자영업자의 회생 가능성을 진단한 뒤 재기 또는 폐업을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반면 한국은 자영업자 스스로 판단해 폐업이나 재기 지원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다. 지원의 실효성이 낮은 이유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출 중심 지원은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현재의 지원 사업은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역부족”이라며 “유럽의 협동조합 모델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상권 단위로 지원·육성하는 식의 대전환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선영.최현주.노유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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