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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부자 만들어줬는데…나를 잊어버리다니" 격노한 521홈런 청정 거포, 화해했는데 또 '불화'

OSEN

2026.02.0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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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프랭크 토마스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 프랭크 토마스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OSEN=이상학 객원기자] 1990년대 메이저리그 최고 거포로 활약한 ‘빅 허트’ 프랭크 토마스(57)가 친정팀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섭섭함을 표출했다. 전성기를 보낸 구단이지만 해묵은 감정이 또 드러났다. 

화이트삭스는 지난 2일(이하 한국시간) 흑인 역사의 달을 기념해 구단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게시물을 구단 SNS에 올렸다. 1951년 구단 최초 흑인 선수였던 미니 미노소를 시작으로 2024년 구단 세 번째 흑인 감독에 선임된 윌 베나블까지 화이트삭스를 빛낸 흑인 선수, 감독, 단장의 역사를 사진과 설명으로 알렸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인물이 사실상 패스됐다. 화이트삭스 역사상 최고 선수인 토마스의 얼굴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1972년 흑인으로는 구단 최초 아메리칸리그(AL) MVP 수상한 딕 앨런을 설명하는 자리에 ‘1993~1994년 토마스가 앨런에 이어 MVP에 이름을 올렸다’고 덧붙인 수준으로 끝났다. 

반면 토마스와 갈등을 빚었던 켄 윌리엄스 전 단장은 구단 최초 흑인 단장을 포함해 세 번이나 언급되며 집중 조명됐다. 

이 게시물을 본 토마스가 완전히 긁혔다. SNS 게시물 댓글로 “너네를 부자로 만들어주고, 모든 기록을 보유한 흑인 선수는 잊혀져도 되는구나! 걱정하지 마라, 증거는 내가 다 챙겼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사진] 선수 시절 프랭크 토마스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 선수 시절 프랭크 토마스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토마스는 1990년 화이트삭스에서 데뷔한 뒤 2008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은퇴하기까지 19시즌 통산 2322경기 타율 3할1리(8199타수 2468안타) 521홈런 1704타점 OPS .974로 활약한 메이저리그 당대 최고의 우타 거포다. MVP 2회, 올스타 5회, 실버슬러거 4회를 수상하며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다. 금지 약물 시대의 ‘청정’ 거포라는 점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커리어 마지막 3년은 오클랜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뛰었지만 전성기는 화이트삭스에서 보냈다. 통산 448개의 홈런을 화이트삭스에서 기록했다. 구단 통산 최다 홈런을 비롯해 2루타(447), 타점(1465), 볼넷(1466), 출루율(.427), 장타율(.568), OPS(.955) 모두 토마스가 1위 기록을 갖고 있을 만큼 화이트삭스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윌리엄스 단장과 갈등을 빚으며 화이트삭스와 관계가 금이 갔다. 2001년 알렉스 로드리게스, 데릭 지터의 초대형 계약이 터지자 기존 계약에 불만을 품고 스프링 트레이닝 중 팀을 무단 이탈하는 사고를 쳤다. 그 이후 거듭된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걸은 토마스는 2005년 화이트삭스가 8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할 때 사실상 ‘없는 선수’ 취급을 받았다. 결국 은퇴 제안을 뿌리치고 16년 몸담은 화이트삭스를 떠났다. 

[사진] 선수 시절 프랭크 토마스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 선수 시절 프랭크 토마스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클랜드로 이적해 부활에 성공했지만 화이트삭스를 향한 앙금이 지워지지 않았다. 2006년 7월 화이트삭스 구단 주치의 두 명을 소송하며 친정과 각을 세웠다. 발이 골절됐는데 주치의들이 타박상으로 오진해 다시 발이 부러졌다는 이유였다. 

2008년 오클랜드를 끝으로 커리어가 끊긴 토마스는 2009년 무적 신세로 1년을 보낸 뒤 2010년 2월 은퇴했다. 화이트삭스 홈구장에서 은퇴를 발표했고, 그해 8월에는 등번호 35번이 영구 결번되며 성대한 기념 행사도 가졌다. 화이트삭스가 먼저 손을 내밀자 토마스도 응답했다. 2011년 소송 중이던 주치의들과 합의해 재판까지 가지 않고 끝냈다. 2015년 월드시리즈 우승 10주년 기념 행사에도 초청받았고, 2024년 토마스의 아들이 홈경기 시구를 하는 등 완전히 화해한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난해 열린 월드시리즈 우승 20주년 재회 행사에 토마스가 참석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번에 화이트삭스 구단이 노골적으로 패싱했고, 토마스가 이에 발끈하면서 불화설이 재점화되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어떤 일이 있지 않고선 갑자기 이렇게 서로 냉랭해질 수 없다. /[email protected]

[사진] 2010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프랭크 토마스의 등번호 35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 2010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프랭크 토마스의 등번호 35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상학([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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