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함께 투자해 그 물건을 사서 50억원을 같이 벌어보실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내 사랑을 이해하시나요?”(범인)
“내일 결제(해) 드릴게요. 통장 번호 알려주세요.”(피해자)
전북 익산에 사는 70대 지적장애 여성이 최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인물(외국인 추정)과 나눈 대화다. 호주에서 가져왔다는 금괴 사진을 보여주며 투자를 권유하는 내용이다. SNS 등을 이용해 불특정 다수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은 뒤 돈을 요구하는 사기, 이른바 ‘로맨스 스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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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경찰청, 사기 예방 영상 제작
경찰이 실제 로맨스 스캠 피해를 막아낸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하며 사기 예방에 나섰다. 전북경찰청은 3일 “익산의 한 농협 지점에서 벌어진 사건을 토대로 제작한 로맨스 스캠 예방 영상을 전북청 SNS에 게시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20일 오전 9시 12분쯤 익산농협 동산지점에서 발생했다. 지적장애 2급 A씨(70대·여)가 예금 창구에서 “통장에 있는 500만원을 이 계좌로 송금해 달라”고 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은행 직원은 “70대 여성이 정기예금 500만원을 해지하려 하는데, 휴대전화 카카오톡 내용을 보면 사기가 의심된다”며 112에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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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사랑해요”
현장에 출동한 익산경찰서 평화지구대 고은성 순경 등이 오전 9시 25분쯤 A씨 휴대전화를 확인한 결과 오픈채팅방엔 금괴 투자 등을 미끼로 한 로맨스 스캠 대화 내용이 수두룩했다. “지금 500만원 보내줄 수 있어요?”(범인) “월요일 오후에 될 것 같아요.”(A씨) “알았어. 이건 비밀로 해줘.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그래야 네 금을 훔쳐가지 않을 거야.”(범인) “알겠습니다. 사랑해요.”(A씨) 등이다.
그러나 A씨는 좀처럼 고 순경과 은행 직원 설명을 믿지 않았다. 범인이 사전에 “경찰이나 은행을 믿지 말라”는 취지로 세뇌해서다. A씨는 상대방 권유에 따라 추가로 500만원 대출까지 받아 현금을 보내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이후에도 A씨는 송금 목적을 숨긴 채 “생활비로 쓸 것”이라고 거짓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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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30분 설득 끝에 피해 막아
경찰이 약 30분간 A씨에게 사기 수법과 피해 사례를 설명하며 설득한 끝에 오전 10시 5분쯤 송금을 중단시켜 1000만원 상당의 피해를 막았다. 이후 A씨는 보호자인 아들에게 인계됐다. 이승호 익산농협 동산지점 업무과장대리는 “평소에 보이스피싱 관련 교육을 받았던 내용과 같아 로맨스 스캠이라는 것을 알고 신고하게 됐다”고 했다.
이 과정은 농협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전북경찰청은 해당 영상을 편집해 실제 범죄 상황과 경찰·은행의 대응 과정을 담은 1분 36초짜리 사기 예방 영상을 제작했다. 경찰 관계자는 “로맨스 스캠은 피해자가 범인을 신뢰하는 상태라 제3자의 설명을 듣지 않을 때가 많다”며 “SNS에서 무분별한 친구 추가나 교제는 자제하고, 부탁을 가장한 입금 요구는 거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도내 로맨스 스캠 범죄는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경찰청 KICS(형사사법포털) 통계에 따르면 전북 지역 로맨스 스캠 발생 건수는 2024년 76건에서 2025년 313건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