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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일하는 회사 늘어난다”…재계, 언어부터 글로벌로 바꾼다

중앙일보

2026.02.02 22:06 2026.02.0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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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기업들이 일하면서 쓰는 ‘주 언어’를 바꾸고 있다. 해외 사업이 점점 중요해지고 외국인 임직원도 많아지면서 한국어만 쓰는 의사소통 방식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은 국내·해외법인이 주고받는 문서를 ‘영어로 단일화’하기로 확정했다. 그동안 한글과 영어를 병용해 왔지만, 중복 작성에 따른 비효율을 줄이고 글로벌 표준에 맞추겠다는 취지다.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주요 계열사도 이에 따른다.

삼성은 지난 2일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바이오로직스 등 3개사를 시작으로, 다음 달부터 국내외 법인이 주고받는 문서를 모두 영어로 작성하도록 하는 지침을 사내에 공지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스1
삼성은 이미 2023년부터 해외법인 내부 문서와 회의 자료를 영어로 작성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다만 국내·해외법인 간 문서는 한글을 쓸 수 있었는데, 같은 내용을 각각 다른 언어로 이중 작성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이번에 영어로 통일했다고 한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와 바이오 계열 일부 조직에서는 회의도 영어로 하는 문화가 자리잡혔다.

현대차그룹도 해외법인과의 공식 의사소통은 영어 사용이 원칙이다. 별도의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해외법인과 주고받는 문서는 영문 작성이 내부 관행이다. 핵심 해외법인의 경우 경영진과 실무진이 다국적으로 구성돼, 영어 소통이 기본 전제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 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흐름이다. 외국인 구성원이 빠르게 늘고, 사업 의사결정이 다국적 조직 단위로 이뤄지면서 한국 중심 언어 체계로는 속도와 효율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당장 외국인과 한국인 직원들이 같은 정보를 동시에 공유하려면 언어 통일이 유리하다. 재계 관계자는 “이제 영어는 단순히 외국인 대응용이 아니라 내부 협업의 전제이자 업무 구조 개편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차는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로 호세 무뇨스 사장을 선임한 이후, 글로벌 경영진과 국내 임직원 간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호세 무뇨스 사장이 타운홀 미팅 ‘2025 리더스 토크’에서 임직원들과 소통하는 모습. 뉴스1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영어 공용어 원칙을 문서로 정리한 사례다. 지난해 3월 가이드라인을 제작·배포해 주요 회의와 해외 사업장 간 소통, 내부 공유 문서에서 영어 사용을 원칙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회의 문화와 인력 운용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이슈를 다루는 회의일수록 영어로 토론 가능한 인력의 참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영어 소통 능력이 회의 참여와 정보 접근의 폭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영어가 이미 ‘기본 언어’다. 최근 논란이 된 쿠팡의 경우, 모기업인 Coupang Inc가 미국 증시에 상장한 미국 기업이어서, 한국 법인에서도 영어가 공용어로 쓰인다. 최고 책임자 직책을 가진 C(Chief) 레벨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 다수가 외국인이어서 회의 진행은 물론 보고서 작성도 영어로 한다. 국내 언론 기사나 한국어 자료를 인용할 때도 모두 영어로 번역해 보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쿠팡은 사내 전문 통·번역 인력만 200명에 달하는데, 이들은 단순 번역가(Translator)가 아니라 ‘Bilingual Specialist(이중 언어 전문가)’라는 직함으로 불린다. 특히 C레벨들은 전담 통역사가 비공식 미팅까지 동행하며 한국인 비즈니스 파트너의 어조와 추임새, 제스처까지 반영하는 통역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해럴드 로저스 한국쿠팡 대표가 국회 청문회에서도 개인 통역사를 고집한 배경에는, 쿠팡 내부에 구축된 촘촘한 통·번역 시스템이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영어로 일하기’가 글로벌 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을 중심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영어 사용 여부가 조직 경쟁력과 협업 속도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며 “업종과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고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우.최현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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