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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급락 '실버 패닉'에 "주문 취소" 문의…은, 지금 팔까 살까

중앙일보

2026.02.02 23:30 2026.02.03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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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42% 급등했던 은 가격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하루 사이 31.37% 떨어지며 온스당 78.53 달러에 마감했다. 이후 시장에선 소폭 회복세가 이어지며 은을 팔아야할지, 저점 매수의 기회로 삼을지 고민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뉴스1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3가 귀금속도매상가에서 일하는 김현상(57)씨는 이틀 전 실버바를 사간 고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지난달 30일 순도 99.9% 실버바 1㎏짜리를 5개 사간 고객은 예약을 취소할 수 있는지 물었다. 당시 실버바 시세는 800만~820만원선에 형성됐는데, 주말 사이 680만~720만원까지 떨어진 탓이다. 김씨는 “지난주만 해도 실버바가 없어 여러 개 구입하는 손님 건 바로 출고를 못하고 공장에 주문을 넣었다”며 “은값이 폭락했다고 하니 취소할 수 있냐는 전화만 오늘 두 통째다. 곧 다시 오른다고 안심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귀금속 거리는 반지 등 장신구를 제외하면 은 제품을 사려는 사람은 없고, 팔려는 발걸음만 이어졌다. 3년 전 결혼한 아들 부부와 온 이복희(62)씨는 “애들 결혼할 때 며느리한테 금 10돈, 은 1㎏을 사줬는데 얼마 전에 ‘어머니 대박났어요’라며 좋아하길래 뿌듯했다”며 “팔고 싶대서 같이 왔는데 며칠 새 100만원 넘게 차이 나니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두꺼운 은 커플링을 찾던 유은하(32)씨와 강현(34) 씨는 “은값이 너무 올라서 은반지 끼면 대학생이냐고 놀리던 게 옛말이 됐다”며 “가격이 떨어졌다길래 지나가다가 사려고 들렀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은 가격이 단기간 급등락하며 시장이 ‘실버 패닉’에 빠졌다. 2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3월 인도분 은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1.9% 하락한 온스당 77달러(약 11만1681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26일 온스당 115.5달러(약 16만7521원) 돌파하며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기세는, 지난달 30일 하루 사이 31.37% 가까이 폭락해 78.53 달러까지 밀려나며 급격히 꺾였다. 같은 날 은뿐 아니라 금(4월 인도분 선물) 가격도 11.4% 하락해 4745.1 달러가 됐다. 이날 마켓워치는 “금·은 시장에서 시가 총액 7조4000억 달러(약 1경721조8600억원)가 증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날 장 마감 뒤 투매 행렬이 잦아들면서 장외 시장에선 다시 가격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3일(현지시간) 오전 2시 은 선물 가격은 83.05달러까지 올라섰고, 금 선물 가격 역시 4791달러까지 반등했다.

은값이 본격 뜨거워진 건 지난해 초부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국제 금과 은 가격은 각각 64%, 142%씩 급등했다. 국내에서도 은 시장은 뜨거웠다. 지난해 4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NH농협) 실버바 판매액은 306억8000만원으로, 2024년(7억9900만원)의 38배를 넘었다. 한국거래소 상장지수증권(ETN)의 최근 1년 수익률 상위 5개 중 2~4위가 은 관련 상품이 차지했다.

케빈 워시가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지명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은을 비롯한 자산 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그가 매파(통화 긴축 선호) 성향이란 분석이 나오면서다. 로이터=연합뉴스

고공행진하던 은값이 고꾸라진 지난달 30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케빈 워시를 지명한 날이었다. 매파(통화 긴축 선호) 성향이란 분석에, 달러화 가치가 높아지고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시장은 해석다. 이자가 붙지 않는 실물자산인 은은 금리가 상승할수록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CNBC는 “보수적인 인물로 알려진 워시가 Fed의 독립성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은 가격이 다른 자산에 비해 큰폭으로 널뛴 건, 2020년대 변곡점을 맞은 은 수급 구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2010년대 중후반까지 세계 은 시장에선 공급이 수요를 소폭 앞섰지만, 최근 태양광·인공지능(AI)·5G·전기차 등 신산업 수요가 폭발하며 본격적인 ‘구조적 부족’ 단계에 진입했다는 진단이다. 은 전문 기관 실버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 연간 은 총수요는 약 11.48억온스(3만5707t)에 달하는 반면, 공급량은 재활용분을 합쳐도 약 10억온스(3만1103t) 수준에 정체돼 있다.

김영옥 기자

특히 은의 절반 이상이 산업용으로 쓰이며 필수 산업재로 떠올랐다. 열·전기 전도성이 뛰어나고 내구성이 강한 산업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체 은 수요 중 산업용 비중은 59로, 실물 투자(17.8%)나 장신구(17.1%) 수요를 합친 것보다 높았다.

산업용 수요의 핵심은 ‘전기·전자’ 부문으로 전체 은 수요의 40.53%에 달한다. 특히 태양광(PV) 산업은 전세계 은 공급량의 20%에 달하는 양을 사용하며, 은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최근엔 AI 열풍으로 서버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고성능 커넥터, 반도체 패키징, 5G 통신 장비 등을 위한 은 수요가 높아졌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AI 열풍이 은 수요의 새로운 게임 체인저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전기차 역시 내연기관차 대비 약 2배 이상의 은(한 대당 약 25~50g)을 필요로 한다. 영국 메탈스 포커스는 “전기차 전장 부품과 충전 인프라가 확대되며 전기·자율주행 자동차 분야의 은 수요는 연평균 3.4% 이상의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은 수요가 높아지고 있지만, 공급은 불안정하다. 지난해 실버 인스티튜트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전 세계 은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멕시코(24%), 페루(14%), 중국(13%) 등 상위 3개국이 사실상 과점하고 있다. 여기에 은은 화학적 안정성이 낮아 부식과 변질에 취약한 데다, 산업용으로 활용한 은은 재활용도 쉽지 않다.

정근영 디자이너

시장이 요동치는 지금 은을 팔아야 할까, 아니면 매수 기회로 삼아야 할까. 전문가들 의견은 ‘단기 혼조, 장기 강세’로 요약된다. 향후 1~3개월까진 지난달 말 대규모 마진콜 여파와 미 통화 정책에 따른 달러 가치 변동이 커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단 견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최근 금·은 가격은 중국발 투기 자본과 추세 추종형(CTA) 펀드, 개인 ETF 투자자 등 영향으로 유례 없는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JP모건체이스도 최근 보고서에서 “은이 당분간 지지선을 찾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결론은 거래가 지나치게 과열됐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장기 관점에서는 낙관론이 나온다. AI를 비롯한 산업용 은 소비가 이어지고 이를 대체할 광물이 없기 때문이다. 옥지회 삼성증권 연구원은 “은은 아연·동 대련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생산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고, 주요 수출국인 중국이 지난 달 은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공급량을 제한한다”며 “이에 비해 은 수요는 매년 확대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은값에 대해 단기적으론 변동성에 유의하고 장기적으론 수급 불균형에 따른 가격 상승을 고려하라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금 대비 은의 상대적 가치를 나타내는 ‘금은비(Gold-Silver Ratio)’를 주목하라는 조언도 있다. 3일 기준 금 가격은 은 대비 57.34배로, 역사적 평균치인 59.46을 뚫고 내려왔다. 보통 시장에선 80배 이상일 경우, 은이 저평가돼 금에 비해 은이 싸다는 뜻으로 읽는다. 지난해 100배에 육박했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 은이 상대적 고평가되고 있단 신호다. 다만 2011년 금은비(약 32배)와 비교하면 여전히 여력이 있단 분석도 있다. 최근 씨티그룹은 “금·은 가격 비율이 2011년 수준까지 내려가면 은 값은 온스당 17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최근 은 가격을 결정한 요소는 중국·인도 투자 수요, 미국 핵심 광물 지정, 런던 현물시장 품귀로 인한 ‘숏 스퀴즈’ 등 많다. 국제 정세에 영향을 받는 안전자산인 점도 고려 요소다. 다만 전문가들은 은이 ‘악마의 금속’이라 불릴 만큼 변동성이 극심한 만큼 ‘분할 매수’ 방식으로 접근할 것을 권고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 시장 규모는 금 등 다른 자산에 비하면 아주 적어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며 “국제 정세 등 영향을 받는 만큼 투기 목적의 수요인 경우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선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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