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좀 듣는다는 이들에겐 1세대 인디밴드 ‘어어부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요즘은 드라마 ‘모범택시’의 갑질 회장이나 예능 ‘직장인들’의 후장님(‘나중에 온 부장’이란 의미로 붙은 별명)으로 친숙한 얼굴이다. 본인은 음악과 연기, 그림 모두 ‘본업’이라고 하는데….
화가 백현진(54)이 돌아왔다. 서울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4일부터 개인전 ‘서울식(Seoul Syntax)’을 연다. 나고 자란 서울의 변화처럼, 자신도 달라지고 있음을 긍정하며 남긴 흔적들이다. 바탕칠하지 않은 허연 장지(壯紙)에 유화로 끄적인 추상화, 백현진만의 어법(Syntax)이다. 그리다 만 듯한 그림에 '멈춤' '초여름' '난제' 같은 문학적인 제목을 붙였다. "갈팡질팡하고 어긋나고 정상적이지 않은 것에 관심이 있다"는 그의 그림은 드라마나 예능 속 명확한 캐릭터를 기대하고 왔을 관객에게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서울 깍쟁이처럼 나긋나긋 또박또박한 말투로 "말로 할 수 없어 그림으로, 음악으로 하는 것. 그림에 관해 설명하기 힘들고, 부질없기도 하다"는 그와, 3일 오래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Q : 전방위 예술가로 불리는데.
A : "그냥 직업이 세 개인 거다. 음악ㆍ미술ㆍ연기 다 동등하다. 배우로 벌어들인 수입이 시장 눈치 안 보고 ‘내가 보고 싶은 그림’ 그릴 뱃심이 되어 주고, 미술에서의 성과가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지속할 조건이 된다. 워런 버핏 식으로 말하면 분산 투자, 포트폴리오를 잘 만든 것 같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하하."
Q :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세 가지 일을 대체 언제 다 하나.
A : "‘직장인들’의 경우 8편을 하루 한 편씩, 총 8일 걸려 찍었다. 직장생활 해 본 적은 없지만, 동네 치킨집에 혼자 앉아 직장인들 관찰하기를 즐겼다. 1년 동안 배우로 일하는 시간은 40~60일 뿐, 나머지 시간은 그냥 혼자 있다. 10시간씩 자고, 멍때리고, 그림 그린다. 찾는 이 없고, 부르는 무대 없을 노년에도 그림은 가장 오래 하게 되지 않을까."
예술가는 막연하지만 오랜 꿈이었다. 선장이던 아버지가 보내주던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총천연색 사진에 묻혀 자랐다. 중학교 때는 허영만 같은 만화가가, 고등학교 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홍익대 도예과 다니는 다섯 살 위 누나를 따라 이불ㆍ최정화ㆍ안은미 등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그렇게 3년을 놀다가 정신 차리고 1994년 뒤늦게 홍대 조소과에 들어갔다. 권오상ㆍ이형구와 동기다. 장영규ㆍ원일과 ‘어어부 프로젝트’를 결성, 1995년부터 홍대 앞 무대에 올랐다. 전시도 열었다. 학교생활은 재미없어 중퇴. 연기는 2000년대 들어 단역으로 시작했다. 영화 ‘북촌방향’ ‘경주’‘브로커’, 드라마 ‘무빙’ ‘모범택시’ 등에서 얼굴을 알렸다. 화가로는 리움미술관ㆍ일민미술관ㆍ아트선재센터를 비롯해 상하이 민생현대미술관, 쿤스트할레 빈, 노르웨이 베스트포센 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기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그에 대해 콜롬비아 출신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는 "백현진은 노래하듯 그림을 그린다. 백현진은 연기하듯 노래한다. 백현진은 그림을 그리듯 연기한다"고 썼다.
전시장의 그림들은 지난해 노르웨이에 머물 때 시작했다. 북유럽 날씨에 개인적 사정이 겹치며 감정이 깊이 가라앉았다. 오십견에 번아웃 상태에서 그렸다지만, 힘 뺀 선들이 제법 자유롭다. "젊었을 땐 덜 그리면 불안해 채우고 채우며 밀도 높은 그림을 그렸는데, 이제는 덜 그린 듯한 그림이 좋다"는 그가 찾은 "몸에 맞는 그림"이다. 회화와 드로잉 30점과 서울 근교의 해 질 녘 정서를 담은 배우 한예리 출연 영상 작품 ‘빛 23’을 출품했다. 전시는 3월 21일까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