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로맨틱 코미디 ‘이 사랑 통역되나요?’에서는 ‘소통’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기 마련. 일단 말을 뱉고 보는 여자 주인공과 생각을 정리한 후 말을 고르는 남자 주인공의 화법 차이는 서로의 마음을 오해하게 만든다. 해피엔딩을 위해서는 서로의 말을 이해하도록 돕는 통역사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이해를 해도 상처는 남는다. 상대가 한 말이 홧김에 던진 진심 없는 말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무척이나 쓰리다.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류는 이성보다 감정에 우선권을 부여했다. 밤길 수풀의 흔들림을 마주했을 때 그 상황의 위험 확률을 논리적으로 계산하기보다, 공포라는 감정을 근거로 일단 도망치는 쪽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뇌에서도 공포를 느끼는 편도체는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보다 앞단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상대의 말이 본심이 아니라는 이성적 판단이 전두엽에서 이루어지기 전에, 날카로운 독설은 이미 편도체를 강타해 정서적 통증을 남긴다.
존 가트맨 박사는 관계 속 신뢰를 정서적 통장에 비유했다. 다정한 말과 행동이 ‘입금’이라면, 모진 말은 ‘인출’이다. 문제는 입금과 인출의 화폐 가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정보가 더 큰 주의를 끄는 부정성 편향 탓에 한 번의 날카로운 인출을 상쇄하려면 최소 다섯 번의 입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부부 싸움에서도 말은 골라 하라는 조언을 하는 것이다. 싸울 때의 말은 진심이 아니라 상처를 주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해하더라도, 나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신뢰하는 사람의 말이 남긴 상처는 몹시 아프다. 결국 사랑이란 상대의 언어를 분석하는 정교함보다, 내뱉는 말 한마디가 상대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낼지 먼저 헤아리는 사려 깊음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