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자사주는 의무소각, 배임죄는 그대로…초조한 기업

중앙일보

2026.02.03 07:0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3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자사주 의무 소각 내용을 담은 ‘3차 상법 개정안’ 심사에 본격 착수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더 센 상법’ 등 재계가 반대해온 법안들은 속전속결로 추진하는 반면, 배임죄 개선 등 기업이 요구한 조항 마련은 ‘거북이 걸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계에서는 “기업 형벌 체계 손질도 함께 속도를 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배임죄 개선으로 대표되는 ‘경제형벌 합리화’논의는 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한국에서 기업 경영 활동을 하다가 잘못하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힘을 받았다. 그간 배임죄는 기업인이 경영 판단 과정에서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고 판단될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해, 경영 활동을 제약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돼 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주원 기자
실제로 기업들 사이에서는 ‘의사결정을 미루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한 10대 그룹 임원은 “불황기일 수록 ‘사업가적 결단’이 필요한데 실패하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전문경영인들을 움츠러들게 한다”며 “리스크를 감수해야 될 때도 있는데 오히려 ‘안전한 선택’만 좇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관련 배임 사건을 수사했던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조차 “배임죄는 차라리 폐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인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배임죄가 가진 ‘칠링 이펙트(과도한 규제로 인해 합법적 활동까지 위축되는 현상)’가 몹시 크다”며 “대규모 투자, 인수합병(M&A) 등 사후에 성패가 갈릴 수밖에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경영 판단 존중’에 따른 면책 원칙이라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한국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배임죄 처벌 수위가 과도하다는 평가다. 미국과 영국에는 별도의 배임죄 규정이 없고 ‘배임’에 해당하는 문제는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사기죄로 다룬다. 독일은 ‘경영상 판단을 존중’하는 원칙을 명문화했고, 일본은 ‘손해를 가할 목적’이라는 고의성을 입증해야 처벌이 가능하도록 한다. 하지만 한국은 경영상 판단이거나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아도 결과적으로 중대한 손해(중과실)를 끼쳤을 때 ‘미필적 고의(손실이 날 가능성을 알면서도 행함)’가 있다고 보고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다. 게다가 형법상 배임죄를 가중처벌하는 특정경제처벌가중법은 50억원 이상의 범죄에 대한 형량이 ‘5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징역’으로 살인죄와 비슷하다.

반면 자사주 의무 소각을 골자로 하는 3차 상법개정안 입법은 속도를 내고 있다. 재계는 합병이나 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취득한 ‘비자발적 자사주’까지 일률적으로 소각 대상으로 규정하면 부작용이 크다는 입장이다. 앞서 경제단체들은 지난달에도 “석유화학 등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에서 M&A가 제약될 경우 구조조정 속도와 유연성이 떨어지고,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의 자본금이 줄어 오히려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고, 그동안 이연돼 있던 막대한 세금까지 한꺼번에 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SK㈜의 경우 자사주 비중 24.6% 가운데 15%가 과거 SK C&C 합병 과정에서 취득한 물량으로, 이를 강제 소각할 경우 5000억원대 세금(양도소득세)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자사주 보유나 처분 때마다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한 중견기업 대표는 “오너 지분이 낮은 코스닥 기업들 사이에선 주총 통과를 위해 사람들을 고용해 소액주주를 설득하는 방안까지 고민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투자 리서치기관 라이트우드파트너스 김한진 연구원은 “경영진 입장에선 매년 주총 리스크가 상시화하고,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도 크게 제약될 가능성이 높다”며“주총에서 안건이 부결될 경우 경영진이 자칫 법 위반 상태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수민([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