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재인상을 막기 위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급파 등 정부의 대미 설득전이 성과를 내지 못한 건 다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지연 이유에 대한 미 측의 의구심 때문으로 드러났다. 국회 구조상 단독 처리도 가능한데 왜 손을 놓고 있었느냐는 게 불만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3일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김 장관이 긴급 방미해 한국 정부가 고의로 입법을 늦춘 것은 아니란 점을 충실히 전달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그럼에도 미 측이 의아해 하면서 이해를 못 한 배경은 민주당이 언제든 법안을 신속 처리할 수 있는 ‘수퍼 마조리티(Super Majority, 절대다수)’ 여당이지 않으냐는 점이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민주당이 대미 투자의 법적 근거이자 한·미 정상이 합의한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 시트)에도 명시된 대미투자특별법을 지난해 11월 발의했지만, 2개월째 안건 상정조차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유감을 거두지 않고 있단 것이다. 특히 그간 민주당이 다른 당론 법안을 단독으로 신속 처리해왔던 것과 대비되면서 이런 불신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지난 1일 뒤늦게 “2월 말 또는 3월 초에는 처리가 가능할 것 같다”(한정애 정책위의장)며 대미투자법 처리 시한을 공언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 측은 관세 인상을 위한 관보 게재 절차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입법 절차나 관련 협상이 진행되는 것과 무관하게 미 측은 언제라도 관세 인상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미 측이 언제든 관보 게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물러섬이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 김 장관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의 면담을 마치고 지난달 31일 귀국해 “관세 인상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은) 관보 게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장관에 이어 지난달 29일 방미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현지에서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면담 일정을 아직 확정 짓지 못했다고 한다. 외교가에서는 미 측의 불편한 심기가 이런 면담 조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소식통은 “면담 일정도 잡지 못한 건 좋은 신호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한·미 양국 간 외교 채널도 총가동되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3일(현지시간)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정식 양자 회담을 갖는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이 주최하는 핵심광물 안보 파트너십(MSP) 장관급 회의 참석차 이날 미국으로 출발했는데, 관세 현안이 급부상하며 별도의 단독 회담 일정을 잡았다.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며 취재진과 만난 조 장관은 “우리 국회 절차에 따라서 양 정부 간 합의된 것이 입법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라서 그런 내용을 미 측에 잘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것”이라며 “제가 만나는 (루비오) 국무장관은 물론이고 다른 미국 정부 인사들, 특히 미 의회 측에도 같은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초 약식 회동(pull-aside) 수준으로 논의되던 루비오 장관과의 만남 형식이 방미 하루 전인 2일 정식 회담으로 바뀐 건 관세 재인상을 막기 위한 우리 정부의 긴박한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