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오직 앞으로만 나가고 우리는 순종의 마음으로 매일 새 출발을 하지만, 실감상 시간은 뒤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디디에 에리봉은 기억 속 세부 무늬를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삶의 핵심이고, 열정적으로 과거를 간직하는 것은 마음의 짐이면서도 상실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라 여겼다. 그런 그들의 회고록이 얼마 전 나란히 출간됐다. 시간은 기억을 쌓고, 기억은 글을 쓰게 한다. 혹은 글이 기억을 불러오고, 기억은 시간을 재구축한다.
대가의 묘사력 선보인 나보코프
어머니 앞에서 무너진 에리봉
상실을 버티게 해주는 글쓰기
『말하라, 기억이여』에서 나보코프는 자연을 언어화하는 데 대가의 솜씨를 보인다. 햇빛이 초록 무늬 속을 파고들며 그의 기억으로 침투할 때 나비 연구가로서의 관찰과 소설가로서의 묘사력이 결합돼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킨다. 에테르 냄새만 맡아도 옛집 현관에 불이 켜지면서 거길 떠돌던 나방을 불러내는 작가. 사람을 기억할 때도 그는 자연에 기댄다. 삼촌이 작곡한 연가는 “가을의 색채와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먼 목소리들”로, 뚱뚱하고 거짓말 잘하던 가정교사의 죽음은 “늙은 백조 한 마리, 무겁고도 무력한 날갯짓, 끈적하게 번들거리는 검은 물결”로 되살아난다.
소설가지만 자서전을 쓸 수밖에 없었던 건, 그가 기억의 보석함에 있던 것들을 등장 인물에게 입히고 나면 진짜 기억들이 작품에 삼켜졌기 때문이다. 그는 그 바깥에 떨궈진 기억들을 자서전에서 구해보려 애쓴다. 러시아 귀족이었던 선조들 덕분에 그의 가족은 방대한 영지를 소유했고, 영국·프랑스·독일 가정교사와 하인들을 거느렸다. 20세기 문턱을 넘었는데도 그는 종종 18세기 인물 같다. 나보코프는 그 시절을 투명하게 불러내면서도 기억이 비대해지는 것에 괘념치 않고 불쾌감도 곧잘 소환한다. 가령 “이방인이자 조난자이며 무일푼에다 병자”로 옛 가정교사를 회고할 때면 저 차가운 명사들을 독자로서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다. 하지만 역사학자 비조키는 역사를 볼 때 “과거 사람들보다 우리가 낫다거나 우리 방식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내려놔야 한다”며 경계했다. 회고록도 작은 역사서이기에 나보코프의 삶 속으로 판단 없이 들어가면 나뭇잎 융단 위로 떨면서 나는 나비를 볼 수 있게 된다.
프랑스 노동계급 가족 출신의 지식인인 에리봉이 어머니를 회고한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은 문턱이 없다. 그는 어머니의 과거를 쓰지만, 그 어머니는 우리의 미래다. 배경지식은 필요 없이 노부모와 그를 돌볼 자녀의 불안·짜증·변덕은 즉각 일반성을 얻는다. 이 회고록에 쓰인 빠듯한 살림살이를 우리도 잘 알고 있고, 언젠가 들어갈지 모를 요양원이 감옥 같다는 데서는 한마음이다.
회고는 ‘실존의 틀’을 결정했던 곳이자 상실이 있는 곳으로 회귀해 그걸 재배치해보려는 시도다. 나보코프와 달리 에리봉에게 어머니를 모실 지역은 장소성이 옅어 그저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아르데코 문양으로 장식된 그곳은 차갑고 비인간적이다. 나보코프의 부모가 진한 향수에 젖어 유럽에서 모국 러시아로 돌아가려 했던 반면, 에리봉의 어머니에게 고향 랭스나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곳은 끔찍한 동네다. 요양원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어머니와 실랑이하는 에리봉은 “이성적으로 생각하셔야 해요. 달리 방도가 없어요”라고 외친다. 그의 말은 가난한 이는 언제나 합리적이어야 하고, 포기할 줄 알아야 하며, 미래의 질서 앞에서는 순종해야 함을 뜻한다. 이것은 에리봉이 평생 공부하며 사상적으로 분투해왔던 것들 앞에서 무너지면서 자신이 그 비판 대상에 되먹임되는 순간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느낌표와 말줄임표를 자주 쓴다. 둘 다 후회의 감정을 얼마간 담고 있지만 슬픔이 느껴지기보다 상황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마음이 읽힌다.
회고록은 삶에 형식과 관점을 부여하는 일이다. 근현대에 들어서 이 장르의 글쓰기는 ‘죽음’ 앞에 다가설 때 중세의 예배당이 담당했던 역할 같은 것을 하게 된다. 두 책 다 기억이 삶을 비집고 들어간다. 과거가 너무 강하면 현재는 ‘유령’이 돼버릴 텐데 다행히 그런 정도로까지 나가진 않고, 대기에 흩어져 있던 기억들을 자기 주름 속으로 잘 품어 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