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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시시각각]무능한 야당이 정권 바꾸는 순간

중앙일보

2026.02.03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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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와 관련해 구윤철 경제부총리 발언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무능한 야당은 정권을 못 바꾼다. "
한동훈과 장동혁, 전·현 당대표가 자기들끼리 극한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의 국민의힘을 비롯해 제 역할 못 하는 야당을 야단칠 때마다 사람들이 혀 끌끌 차며 꺼내 드는 단골 레퍼토리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 무능한 야당도 얼마든지 정권을 바꾼다. "
실은 지난 두 번의 정권 교체가 다 그랬다. 정부 견제나 정책 대안 등 수권정당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주기는커녕 야당이 아무리 무능해도 권력이 오만하면 정권을 내줬다. 지리멸렬한 야당 비웃으며 영원히 집권할 것처럼 폭주하다가 자멸했다는 얘기다. "100년 집권" 운운이 무색하게 10년도 아니고 고작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문재인 정부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이 대통령, 연일 부동산 메시지
국민과 싸우는 듯 과한 자신감
지리멸렬 야당 숨통만 틔운다

복기해 보자. 불과 14년 전인 2012년엔 민주당이 딱 지금의 국민의힘 같았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게 인지상정인데, 정권 내주고 나눠 먹을 거 별로 없으니 허구한 날 자기들끼리 물어뜯고 싸웠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인기가 바닥 수준이라 다들 "질 수 없는 선거"라던 그해 4·11 총선, 결과를 까보니 여대야소(국민의힘 전신 새누리 152석, 민주 127석)의 야당 참패였다. 망하는 정당이 늘 그렇듯, 이때도 공천이 문제였다. 친노 위주 공천이 옛민주당 계열 호남의 반발을 불러와 지지기반 이탈 요인(탈당 후 창당)이 컸다. 반성은 없었다. "근소한 차이로 진 사람이 많다"느니 "수도권에선 이겼다"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식의 정신승리에 급급했다. 정권과 싸우는 대신 내홍에 빠져 자기들끼리 치고받느라 당연히 정권은 되찾아오지도 못했다. 딱 요즘 국민의힘 같았다. 한마디로 무능했다.

세월호 사건,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 속 여당의 자중지란 덕분에 무능한 야당 민주당이 거저 줍다시피 정권을 잡았다. 이제 무능한 야당 자리는 국민의힘(옛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몫이었다. 민주당이 2018년 지방선거 압승에 이어 21대 총선(2020)에서 역대 최대 180석을 차지한 후에도 국민의힘은 제대로 된 반성이나 외연 확장을 위한 개혁은커녕 자기 당에서 대선 후보 하나 내지 못하고 당권에만 연연하다 상대편 검찰총장을 수혈해와 대선 무대에 세웠다. 이렇게 말도 안 될 정도로 무능한 야당인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을 이겼다.

국민의힘의 대선 승리 요인을 딱 하나만 꼽을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탄핵 비상시국에 대안세력 부재라는 반사이익 덕에 얻은 정권이라 통합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는데도 적폐청산에만 매달렸다. 입시 비리가 야기한 조국 사태(2019)는 내로남불 부메랑으로 돌아와 문재인 정부 심판론의 도화선이 됐다. 여기에 불을 붙인 건 부동산 정책이었다.
지난 2020년 9월 경실련은 문재인 정부 전 현직 장관들이 보유한 부동산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다주택 고가 주택 소유자 비율이 높았다. 이는 지금 이재명 정부도 마찬가지다. 연합뉴스
취임 100일 즈음 문 대통령은 "주머니 속에 강력한 집값 대책이 있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하지만 임기 중 무려 28번의 부동산 대책을 통해 세금 등 모든 규제 수단을 총동원한 수요억제책을 내놓으며 다주택자 잡기에 혈안이 될수록 집값은 더 뛰었다. 임기 말 그가 부동산과 관련해 남긴 말은 "할 말 없다"였다. 그렇게 정권이 넘어갔다.

이렇게 장황하게 옛이야기를 꺼낸 건 이재명 대통령의 과도한 자신감이 불안해 보여서다. 그는 지난달 23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부활을 예고한 뒤 X(옛 트위터)에 부동산 관련 글을 10건 넘게 올렸다. 어제(3일)도 "마귀에게 최소한의 양심마저 빼앗겼느냐"는 험한 말까지 써가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잡는다"고 했다.

턱없이 치솟는 집값 잡기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다만 다주택자를 전부 투기꾼으로 몰거나, 모순되는 다주택 규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상식적 반응까지 싸잡아 악마화해 무리한 정책을 펼치는 데 찬성할 국민도 없을 거다. 이런 시도는 다 죽어가는 무능한 야당 숨통만 틔워주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만 크다. 그걸 알고도 지금 이러는지 모르겠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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