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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 동반성장과 경제 민주화를 다시 생각한다

중앙일보

2026.02.0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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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한국 경제는 지금, 반도체 등 극히 일부 산업의 호황에도 심각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장률은 0%대와 1%대를 오가며 좀처럼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득 분배도 상위 1% 사람들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15%, 상위 10%는 전체의 50%에 육박해 사회 통합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한마디로 저성장 양극화의 늪에 빠졌다.

함께 파이 키워 공정하게 나누는
동반성장만이 양극화 극복 해법
그 제도적 토대는 경제 민주화
정부는 엄격한 심판관 역할 해야

이 위기의 바탕에는 과거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낙수 효과의 단절이 있다.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이나 가계로 이어지는 ‘선순환 연결고리’가 끊긴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제조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각각 6~8%, 2~3% 수준이었다. 이 격차는 생산성 차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납품 단가 인하, 원자재 가격 상승분의 전가, 기술자료 요구와 전속 거래 관행 등 각종 불공정 거래는 단기적으로 대기업은 살찌웠을지 몰라도 중소기업을 더욱 허약하게 만들어 양극화를 초래했다. 그 결과는 경제 전체의 저성장이다. 대기업의 경쟁력은 결국 튼튼한 중소기업에서나 나오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충격과 고환율은 그 격차를 더욱 구조화하고 있다. 관세로 인해 대기업이 비용 압박을 받는 순간 그 부담은 납품 단가, 물량 조정, 계약 조건 변경의 형태로 하청 중소기업에 전가된다. 이러한 현상은 고환율과 결합돼 더욱 심해진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대기업 수출에는 보호막이 되지만, 중소기업에는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과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진다.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번영을 누리려면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나는 지난 17년간 ‘동반성장’을 주창해 왔다. 동반성장은 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다시 연결해 지속 가능한 성장과 양극화 해소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철학이며, ‘함께 파이를 키워서 공정하게 나누자’는 원칙을 담고 있다. 그것은 대기업의 시혜나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 규칙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함께 파이를 키우는 단계부터 대기업은 혁신 기술을 개발·공유하고, 중소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기술력을 향상시키며 상생의 선순환 고리를 생산 시스템 내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제 전체의 역동성이 회복돼 형평과 성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경영자들이 공동체 의식을 키워야 한다. 과거 대기업의 성공은 ‘한국주식회사(Korea Inc.)’라는 인프라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정책을 토대로 이룬 것이기에 대기업들은 국가와 사회에 대해 마땅히 갚아야 할 ‘사회적 빚’을 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부 대기업들은 성과공유제, 상생펀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미미하다. 왜인가? 현재의 프로그램은 효과성이 낮거나 사후 보상에 머물러 있다. 성과가 발생하면 나누자는 접근이지만, 성과가 실현된 이후에는 협상력이 지배한다. 대기업은 언제든 다른 공급처 등 선택지를 갖는 반면, 중소기업은 이미 설비를 선투입한 상태다. 사후 협의는 공정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불균형을 재생산하는 장치가 된다. 사전적으로 위험과 성과를 공유하는 제도적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동반성장을 뒷받침할 제도적 토대는 ‘경제민주화’이다. 경제민주화는 동반성장의 협력적 모델이 작동할 수 있도록 공정한 경기장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는 헌법 제119조 2항에 근거한다: “국가는…(중략)…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경제 주체 간의 조화’는 대·중소기업 간 불균형을 해소하라는 헌법의 명령이자 헌법 가치를 실현하는 국가의 의무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 위에 동반성장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무엇일까?

첫째, 정부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공정한 관찰자’로서 시장의 왜곡을 방지하고 공정성을 확보하는 엄격한 심판관이 돼야 한다. 기술 탈취 등 불공정 거래 관행을 엄단하는 법제도를 확립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해 강력한 집행력을 부여해야 한다. 근로자 복지 및 문화시설 구축 등을 통해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부분적으로 나마 보상하고, 정부 사업 가운데 일정 비율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해 자생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둘째, 대기업은 종래의 관행인 단기 이익 추구를 넘어 연구개발 지출을 핵심 원천 기술 연구에 집중하고, 개발된 첨단 기술을 중소기업과 공유해야 한다. 또한 초과이익공유제를 도입해 협력사의 재투자와 임금 인상을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함께 가야 멀리 가고, 공정해야 오래간다. 경제민주화라는 토대 위에 동반성장을 선택할 때 저성장과 양극화 극복이 가능하다. 그제야 비로소 ‘한강의 기적’은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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