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스키 8학군' 있다면 여기…신이 깎은 듯한 돌로미티 슬로프를 가다

중앙일보

2026.02.03 12:00 2026.02.03 12:46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중앙일보 고봉준 기자가 2일 코르티나담페초 팔로리아 스키장에서 돌로미티를 바라보고 있다. 이곳 바로 옆 슬로프인 토파네에서 동계올림픽 스키 알파인 여자 경기가 열린다.
순백의 옷을 입은 거대한 산맥은 마치 신이 직접 깎아낸 것 같았다. 가파르면서도 매끈하게 굴곡진 슬로프는 두려움 못지않은 도전정신을 불러일으켰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설상(雪上) 종목을 치를 코르티나담페초 지역의 대표적 산군 팔로리아와 크리스탈로를 지난 2일(현지시간) 찾았다. 전 세계 스키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이 지역은 알프스산맥 지류를 끼고 있어 절경만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각종 국제대회가 수시로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무작정 체험기를 쓰고 싶었으나 플랜은 무계획이나 다름없었다. 인터넷으로 ‘개막 직전에도 운영하는 코스가 있는지’를 검색했고, 알파인 여자 경기가 열리는 토파네를 제외하면 나머지 슬로프는 이용할 수 있다는 답을 얻어냈다. 가장 큰 문제인 장비 대여도 폭풍 검색을 통해 해결했다.

가방 하나 덜렁 메고 밀라노에서 6시간 걸려 도착한 코르티나담페초. 솔직히, 알프스를 타고 내려온다는 자체만으로도 피곤함보다 설렘이 컸다. 그러나 2000m 고지에서 대자연과 마주하자 후회가 들었다. 가장 중요했던 요소, 내 실력을 깜빡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스키를 배우기는 했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간간이 스키장을 찾았던 것이 전부. 실력이 늘 리는 만무하고, 30대부터는 올림픽처럼 4년 주기로 부츠를 신었던 지라 첫 발을 떼기조차 어려웠다.


이때 도움을 준 이가 있었으니, 이곳에서만 45년째 스키 강사로 일하고 있는 티지아노 치프리아노(68·이탈리아)였다. 국내와 현지 인맥을 통해 알게 된 코르티나담페초 스키장의 산증인이 현장 가이드이자 일일 코치로 나섰다.

솔직히, 알프스를 타고 내려온다는 자체만으로도 피곤함보다 설렘이 컸다. 그러나 2000m 고지에서 대자연과 마주하자 후회가 들었다. 가장 중요했던 요소, 내 실력을 깜빡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스키를 배우기는 했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간간이 스키장을 찾았던 것이 전부. 실력이 늘 리는 만무하고, 30대부터는 올림픽처럼 4년 주기로 부츠를 신었던 지라 첫 발을 떼기조차 어려웠다.

돌로미티 스키장 체험을 도와준 티지아노 치프리아노가 코르티나담페초 시내를 가리키며 이곳의 스키장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고봉준 기자
정상 언저리 급경사 구간을 속도를 한껏 줄여 통과하자 ‘일일 스승님’이 마음을 읽은 듯 쉬운 코스 쪽으로 방향을 튼다. “시선을 저 멀리 산맥 쪽에 두라”는 조언도 곁들인다. 그제야 주변의 수려한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당초 목표로 삼은 설질 체크까진 무리였지만, 적설량이 충분하다는 사실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 ‘클리프 행어’ 촬영지로도 유명한 코르티나담페초는 70년 전인 1956년에 일찌감치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겨울스포츠 성지’다. 인구 6000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 성수기엔 전 세계에서 수만명이 몰려드는 관광지로 바뀐다. 중심가에는 최고급 빌라와 온갖 명품 상점이 즐비하다.

지구촌의 급격한 기후 변화는 이곳에도 영향을 미쳤다. 눈의 양은 갈수록 줄고, 2월 평균 기온은 70년 전과 비교해 3.6도나 올라갔다. 여기저기서 인공 눈을 만드는 기계를 볼 수 있었다. 치프리아노는 “최근에 큰 눈이 내려 오늘은 설질이 최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공 눈을 많이 뿌렸다”고 했다.

알프스산맥에 자리 잡은 천혜의 스키장에서 가짜 눈을 밟아야 하다니. 표정을 읽은 치프리아노가 너털웃음과 함께 “걱정스러운 상황은 아니다”며 팔을 내저었다. 천연설이 무려 7m 높이로 쌓여 고생한 4년 전 경험담을 들려주며 “눈 오는 시기가 뒤로 조금 미뤄졌을 뿐 스키장 운영엔 지장이 없다”고 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 이변을 우려하는 외부 시선이 잘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다음날인 3일 코르티나담페초에는 오전 내내 함박눈이 내렸다.

팔로리아 코스를 타고 내려올 때 저 멀리 이번 올림픽 알파인 여자 경기를 치를 토파네 슬로프가 보였다. 며칠 뒤면 ‘스키 여제’라는 칭호를 나눠 쓰는 린지 본(43)과 미케일라 시프린(32·이상 미국)이 설원을 질주할 코스다. 치프리아노는 “본과 시프린은 이곳에서 거의 매년 보는 단골손님이다. 다만 대회 기간 날씨가 좋지 않다는 예보가 나와 걱정”이라고 했다.

천신만고 끝에 단 한 차례도 넘어지지 않고 코르티나담페초의 스키 데뷔전을 마치려는 찰나, 스승의 뼈 있는 한마디가 귓가를 때렸다. “그렇게 느리게 내려오면 넘어질 수가 없지. 한국 청년, 연습 많이 해야겠어.”






고봉준([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