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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 되고 직장 안정되니…8년 딩크도 깨졌다" [90년대생 엄마가 온다]

중앙일보

2026.02.03 12:00 2026.02.03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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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엄정혜·김승훈씨 부부가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아들 호수군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우상조 기자

동갑내기 엄정혜·김승훈(36)씨 부부는 8년간의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 맞벌이 무자녀 부부)’ 생활을 끝내고 지난해 첫째 아들 ‘호수’를 얻었다. 아내 정혜씨는 20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사실상 출산을 포기한 상태였다. “아이 기르는 건 여성에게 손해”라는 인식이 강했고, 본인은 석사 과정 2년을 마친 직후인데다 남편은 프리랜서로 일하던 상황이었다. 넉넉지 않은 경제 상황에 출산까지 감당하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

생각을 바꾼 건 30대 초반에 들어서고 주거가 안정되면서부터였다. 두 사람은 신혼 희망 타운 청약에 당첨돼 지난 2024년 아파트에 입주했고, 이후 삶이 조금씩 달라졌다. 남편 승훈씨는 “임대아파트를 전전할 땐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하나’ 싶어 불안감이 컸다”며 “이 집에 들어온 뒤 단지 안에서 또래 신혼부부들이 아이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출산을 결심했다”고 했다. 정혜씨 역시 “막상 해보니, 인생을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하는 여러 선택지 중 아이를 낳는 일이 가장 해볼 만한 시도라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엄정혜씨가 아들 호수군, 반려견 콩이와 함께 있는 모습. 엄씨는 "콩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헌신하고 애정을 줘보니, 아이를 키우는 것도 보람이 클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에코붐세대 여성 10인 "갖춰지면 낳는다”

8년 만에 반 토막(2015년 43만8420명→2023년 23만28명)이 난 국내 출생아 수는 2024년을 기점으로 반등했다. 지난해는 11월까지 23만3708명으로, 연간 총 25만명을 넘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흐름은 길었던 저출생의 터널 끝에 온 ‘상승 국면’의 시작점일까, 아니면 기저 효과나 반짝 착시에 불과할까.

중앙일보는 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최근 2년간 아이 낳을 선택을 한 에코붐세대(1990년대 초중반 출생) 기혼 여성 1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은 극심한 출생률 하락 시기 동안 “아이 낳으면 무조건 손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 들어선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이 갖춰질 경우 출산을 선택하거나 오히려 출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있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출산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요인으로는 ▶경제적 안정 ▶재택근무 확대 ▶배우자의 도움 ▶출산·육아를 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직장 문화 등을 주로 꼽았다.

              김영옥 기자

3년간 딩크로 지내다 지난해 아이를 낳은 황모(33)씨가 대표적이다. 대학 졸업 후 사기업에 근무하다 공공기관으로 이직한 것을 계기로 출산을 결심했다. 그는 “야근이 잦은 이전 회사에선 일이 우선이라는 가치관에 따라 결혼·출산은 항상 우선순위 밖에 뒀다”며 “이직 후 정시 퇴근이 보장되고, ‘애 둘 엄마’ 동료들도 주변에 많이 있는 환경에 놓이니 결혼·출산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음 달 출산을 앞둔 직장인 이모(30)씨도 업무 환경의 변화가 출산 결심으로 이어졌다. 2024년 결혼 이후 외국계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 들어간 그는 현재 부서로 온 뒤부터 경기도 이천에 있는 집에서 전면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이씨는 “온전히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니 자연스레 임신을 계획하게 됐다”며 “주위에 반도체 회사 등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서 그런지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아파트 단지에 강아지는 안 보이고 아이들만 빽빽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결혼한 경찰 공무원 이승연(30)씨는 “공무원이라 상대적으로 육아 휴직을 원활하게 쓸 수 있어 자녀 계획에 큰 힘이 된다”며 “산전 검사 지원 등을 받으며 임신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정부가 꾸준히 추진해 온 저출생 대응 정책 효과가 일부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신생아 특례대출 등 주거 지원 정책과 육아휴직 제도 확대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고용행정통계에 따르면 일·가정 양립 제도의 혜택을 받은 수급자는 33만9530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3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구조적 반등으로 보긴 일러”

결혼·출산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엔 누적 출생아 수가 늘었을 뿐 아니라, 출생의 선행 지표인 혼인 역시 11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498건(2.7%) 늘어난 1만9079건으로 나타났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에코붐세대의 가임 기간 동안은 출생률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를 지속가능한, 구조적 반등으로 해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이 많다. 팬데믹 이후 유예된 결혼·출산이 재개된 데 따른 기저효과도 함께 고려해야 하며, 에코붐세대 인구 증가 등의 통계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 시기에 지연됐던 결혼과 출산이 재개되고, 30대 여성 인구가 늘어난 영향으로 당분간 출생아 수 증가세가 이어질 수 있지만 일자리·주거·교육 전반에서의 근본적인 구조 변화 없이는 반등이 장기 흐름으로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서 결혼과 출산을 많이 하면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소위 ‘이웃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의 실질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 역시 “에코붐세대 이후엔 다시 ‘절벽’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관련 인센티브 정책은 지속해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아미.김예정.한찬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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