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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안 낳거나 둘 낳는다…90년대생의 출산 결심 [90년대생 엄마가 온다]

중앙일보

2026.02.03 12:00 2026.02.03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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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한 산부인과 로비에서 방문객이 진료를 기다리는 모습. 곽주영 기자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지난달 28일, 이른 아침부터 서울 강동구의 한 산부인과 병원 앞이 북적였다. 밖에서 대기하던 임신부와 보호자 등 10여명은 오전 8시 30분 진료 접수 대기실의 문이 열리자마자 우르르 병원 1층 로비로 몰려들었다. 인근 주민 사이에서 ‘출산 전문 병원’으로 입소문을 탄 이곳에선 진료 전부터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는 일이 최근 몇 달간 계속되며 ‘오픈런 산부인과’로 알려졌다.

결혼 6년 차에 둘째를 임신한 이수민(38)씨는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아이를 가지니 임신 시기가 30대 후반으로 늦어지긴 했지만, 주변에 아이 가지려는 사람은 분명 많아진 것 같고 우리 부부 역시 자연스레 아이를 갖게 됐다”며 “둘째 몫까지 총 6년 육아 휴직을 쓸 수 있고, 남편도 1년을 이미 썼다. 휴직 제도가 전보단 좋아져 부담이 줄었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2024년부터 이어진 출생률 반등의 주역으로 꼽히는 에코붐세대(1990년대 초·중반 출생자)가 직전 세대보다 더 적극적으로 출산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중앙일보가 확인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4년 출생아 수 반등 원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년 대비 늘어난 30대 출산 1만924건 중 여성 인구가 늘어난 것에 따른 영향은 3.2%(353건)에 그쳤다. 늘어난 출산 가운데 96.8%(1만571건)는 30대 여성이 기존 세대보다 더 많이 ‘출산을 선택한 결과’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출생아 수는 2015년 43만8420명에서 2023년(23만28명)까지 8년 연속 줄었다가 2024년 전년 대비 3.6% 늘어난 23만8317명으로 반등했고, 지난해엔 11월까지 23만3708명을 기록하며 증가세를 이어갔다.

           김주원 기자



‘아이 낳을 결심’과 ‘0 아니면 2’가 출생률 반등 이끌어

그간 에코붐세대가 결혼 및 출산할 연령대가 된 것이 출생률 반등의 주된 요인으로 꼽혔지만, 연구팀은 이처럼 개인의 출산 의향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바꿔 말하면 출산을 손해로 인식하고 기피하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대로인 상황에서 출산 시기에 도달한 인구만 증가한 게 아니라, 스스로 아이 낳을 의지를 갖고 실행에 옮긴 1990년대생 엄마가 늘었다는 뜻이다.

특히 둘째 출산이 전체 출생아 증가에 기여한 정도가 첫째 출산의 기여도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베이비붐세대의 자녀들인 이들은 인구 자체도 다른 세대보다 많다. 하지만 출산 인구 증가에 따른 영향보다는 이들이 생각을 바꿔 더 많이 ‘출산할 결심’을 하게 된 것, 그리고 기왕에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고 나선 둘째까지도 적극적으로 낳는 ‘0 아니면 2’ 트렌드가 출생률 반등에 있어 더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김주원 기자
연구팀에 따르면 2024년 출산율 증가에 있어 30대의 둘째 출산 기여도(76.45%)가 첫째 출산 기여도(76.19%)를 넘어섰다. 이는 연령별 인구수 및 출산율, 혼인과 미혼 출산 등 다른 인구학적 요인은 전년 대비 바뀌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 둘째 출신 증가로 인해 전체 출생아 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분석한 값이다. 연구팀은 “이전 시기에 대한 분석에서 둘째 출생률 변화가 출생아 수 변화의 중요한 요인이었던 때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원 느니 둘째 출산 생각도”

2015년 16만6000명이었던 둘째 출산은 2023년 7만4000명으로 절반 아래까지 줄었다가, 2024년 7만6000명으로 증가 전환했다. 일·가정 양립 정책, 늘어난 출산 지원 등으로 한동안 고려조차 하지 않던 둘째 출산이라는 선택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늘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만나 본 30대 여성들 사이에서도 “예전에 비하면 둘째를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일부 확산한 것이 느껴진다”는 의견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둘째를 낳은 김모(33)씨는 “첫째 출산 때 ‘첫만남이용권’ 200만원 등 현금성 지원들을 받아보니 둘째를 낳아도 부담이 생각보다 크진 않겠다고 느꼈다”며 “첫째 때 어린이집 보내기가 어려웠는데, 둘째 임신하니 첫째 어린이집 입학도 좀 수월해지는 등 이점도 많다”고 했다.

지난달 2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임신부 한모(30)씨가 산모수첩과 초음파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찬우 기자
더 근본적으로 출산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이 출생률 반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이 2024년 출산 경험 여성 1003명을 대상으로 출산 영향 요인(5점 만점)을 설문한 결과, 본인 의지(4.24), 배우자 의지(4.2), 본인 및 배우자의 연령(4.09)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지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단순히 인구가 많은 세대가 혼인 적령기에 진입했다는 것 때문에 출생률이 높아진 건 아니다”고 해석했다. 올해 여름 출산을 앞둔 한모(30)씨는 “예전과 비교하면 경력 단절에 대한 우려가 확실히 줄면서 주위에서 결혼이나 출산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18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한 결혼박람회가 예비 부부로 붐비고 있다. 한찬우 기자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출산을 적극 고려하는 분위기다. 11월 결혼식을 앞두고 지난달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결혼박람회를 찾아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계약을 마친 이한조(34)씨는 “예전엔 ‘욜로’나 ‘골드미스’ 같은 표현이 유행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가정을 꾸리는 게 일종의 유행이 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들 결혼이나 출산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5월 결혼을 앞둔 30대 여성 전호진씨는 “요즘엔 주변에서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 맞벌이 무자녀 부부)’라는 말도 예전만큼 안 쓰는 것 같다”며 “우리도 아이를 최소한 한 명은 낳고 싶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 1일 공개한 미혼남녀 결혼의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의 결혼 의향은 전년 대비 2.3%포인트 오른 60.8%, 여성의 결혼 의향은 3%포인트 오른 47.6%로 나타났다. 출산 의향도 남성(62%)과 여성(42.6%) 모두 각각 전년 대비 3.6%포인트, 1.7%포인트 늘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과 출산에 대해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정 부분 만들어졌다”며 “마음 맞는 누군가와 함께 자산을 형성해 삶을 꾸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고독이나 외로움 등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두려움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삼권.곽주영.한찬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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