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고법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뒤집은 판결을 두고 법조계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대법원장이 재판에 개입할 직무권한(직권)이 있다고 판단한 점이 주효했는데, ‘직권의 유무’를 판단할 기준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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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 없으면 남용 없다” 판례 깬 서울고법
서울고법 형사14-1부(재판장 박혜선)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유죄 선고문에서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의혹(직권남용 혐의)을 무죄로 확정한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일반적이고 확립된 판례라고 보기 어렵다”며 정면 비판했다.
형법 123조의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①직권을 ②남용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③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④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한다. 이 가운데 실무적 핵심은 ‘직권’의 유무다. 법 구조상 직권 없는 공무원의 권한행사나 직권과 전혀 관계없는 권한을 오용하는 행위는 직권남용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권남용죄의 토대가 되는 ‘일반적 직무권한’(직권)에 대해 판례는 ‘법령상 근거가 있거나, 명문이 없더라도 법·제도를 종합적, 실질적으로 관찰해서 공무원의 직권에 속하는 경우’라고 정리하고 있다.
대법은 이런 법리에 근거해, 2022년 4월 임 전 부장판사가 속한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하거나 관여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른바 “직권이 없으면 남용도 없다”는 법리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 개입 의혹을 맡은 1심 재판부 역시 임 전 부장판사 관련 대법원 판례를 끌고 와서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남용할 직권이 없기 때문에 무죄”라는 논리 구조를 채택했다.
서울고법은 두 판결과 달리 대법원장의 일반적 직무권한의 범위를 넓힌 후 대법원장에게 직권이 있다고 보고 직권남용을 인정했다. 자세히 보면 1심과 서울고법은 모두 양 전 대법원장의 ‘일반적 직무권한’ 자체를 인정한 점에서는 같았다. 대법원장의 일반적 직무권한은 ‘헌법재판소 등에 대한 대외관계 업무 등을 수행하기 위해 법관 등 관계 공무원을 상대로 필요한 정보의 제공 및 협조 등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다. 1심은 이런 정의를 바탕으로 ‘재판사무 핵심영역’에 개입할 직권은 대법원장에게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일반적 직무권한을 토대로 ‘형식적, 외형적으로 직권을 행사한 것처럼 보이면’ 직권이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장에게 재판사무 핵심영역의 직권은 없다는 점을 1심과 같이 하면서도, ‘외관’을 이유로 사법행정권자(양승태)로서 일반적 직무권한이 있다고 연결했다. 이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 중 2개 혐의에 대해 유죄(재판개입)를 인정하고 직권남용을 유죄로 뒤집었다.
서울고법은 논리 정당화를 위해 2022년 4월 임 전 부장판사 판결이 아니라, 외관상 일반적 직권이 있으면 관련 직권이 존재한다고 판단한 다른 판례를 끌고왔다. 서울고법은 그러면서 2021년 3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권양숙 여사 등에 대해 동향 파악을 지시한 혐의에 대해 직권남용 유죄 판단을 내린 대법 판결을 예로 들었다. 당시 대법원은 ‘형식적, 외형적으로 그 행위자들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한 직권’이라는 이유로 정치관여 행위를 직권남용으로 인정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서울고법의 판단에 대해 “임성근 부장판사와 관련한 대법 판결에는 맞섰지만, 다수의 대법 직권남용 판례에는 충실한 판결”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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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해석 비판도
법조계 일부에서는 서울고법의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권남용죄 판결에 대해 “무리한 해석”이라고 비판한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직권남용죄에선 직권 유무가 애매한 경우가 많아 대법원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측면이 있다”며 “형벌권을 확장하는 해석보다는 형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형법 전문 변호사는 “직권남용죄에서 ‘직권’은 강제력을 수반하는 경우로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서울고법의 판결은 대법에서 깨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