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정승우 기자] 늘 빙상에 가려졌던 한국 설상이 밀라노에서 처음으로 중심에 설 수 있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불모지로 불리던 스노보드와 프리스타일 스키가 이번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첫 멀티 메달, 더 나아가 첫 금메달까지 현실적인 목표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한국 설상 종목의 올림픽 최고 성적은 2018 평창 대회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배추보이' 이상호가 따낸 은메달 하나였다. 그 한 장의 메달 이후 8년, 판이 달라졌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스노보드 5개 세부 종목에 11명의 선수를 출전시킨다. 가장 먼저 메달 사냥에 나서는 주인공은 이상호와 김상겸이다. 특히 이상호는 개막 직전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스노보드 월드컵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개인 통산 네 번째 월드컵 우승이었다. 베테랑 롤란드 피슈날러와의 결승은 사진 판독까지 가는 접전이었고, 그 승리는 올림픽 멀티 메달 도전의 신호탄이 됐다.
설상의 시선은 13일 열리는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로 옮겨간다. 중심에는 '여고생 보더' 최가온(세화여고)이 있다. 그는 올 시즌 월드컵에서 3전 전승을 거두며 여자 하프파이프 세계 랭킹 1위로 올라섰다. 한국 선수단에 설상 종목 첫 금메달을 안길 가장 유력한 후보로 평가받는 이유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주목 선수 명단의 맨 앞에 최가온의 이름을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브스는 최가온을 "리비뇨에서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는 클로이 김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표현했다. 실제로 최가온은 14세 2개월의 나이로 X게임 파이프 종목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고, 이번 시즌에는 출전한 모든 월드컵 대회를 제패했다. 반면 클로이 김은 어깨 부상 여파로 시즌을 완주하지 못한 상태다.
설상 메달 기대는 스노보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금메달이 가장 많이 걸린 프리스타일 스키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남자 모굴의 정대윤은 지난해 세계선수권 동메달로 한국 설상 사상 최고 성적을 기록했고,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목표로 내걸었다. 남자 스키 하프파이프의 이승훈과 문희성 역시 메달 후보로 분류된다. 이승훈은 프리스타일 월드컵과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이미 한국 설상의 한계를 한 차례 넘어섰다.
빙상이 아닌 설상에서, 그것도 한 종목이 아닌 여러 종목에서 동시에 메달을 기대하는 그림은 한국 동계올림픽 역사에서 낯설다. 밀라노는 그 낯섦이 현실로 바뀔 수 있는 무대다. 이상호의 꾸준함, 최가온의 폭발력, 그리고 프리스타일 스키로 이어지는 흐름까지.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설상은 더 이상 '도전'이 아니라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