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경각 옥루(玉漏)'라는 게 있다.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 자격루의 발명가 장영실이 세종대왕만을 위해 만든 자동 물시계다. 겉모습만 보면 3m 높이의 아름다운 산이다. 꼭대기엔 해와 달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혼천의가, 산의 사분면엔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사계절이 담겨있다. 산 아래 평지엔 계절에 맞춰 모내기와 밭 가는 농부, 눈 내린 기와집 등이 미니어처로 돼 있다. 하지만 분명히 시계다. 네 명의 선녀 인형이 매시간 요령을 흔들고, 12지신상이 각자의 때에 맞춰 튀어나와 시간을 알린다.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이 조선왕조실록 등 옛 문헌을 연구해 2019년 복원에 성공한 ‘작품’이다. 자격루처럼 4각 형태를 한 물시계는 중국에도 있지만, 아름다운 산 모양을 한 물시계는 세계에서 옥루 하나뿐이다. 물시계 옥루엔 천문학과 애민(愛民) 정신, 그리고 예술성까지 담았다. 영국의 세계적인 과학사학자 조지프 니덤(1900~1995)은 옥루를 당대 동아시아 기계시계 기술의 정점이며, 천문 시계와 자동인형 예술의 결합체라고 평가했다.
옥루는 지금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2층 한국과학기술사관에 있다. 바로 옆엔 2022년 10월 서울 고궁박물관에서 옮겨온 보루각 자격루(복원품)가 자리 잡고 있다.자격루가 전시돼 있던 자리엔 지금 물항아리만 남은 진짜 ‘자격루’ 일부(국보)가 대신 들어섰다. 아쉬운 건, 니덤이 극찬한 옥루와 자격루를 수도 서울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고궁박물관엔 지난해 84만 명이 찾았고, 이 중 29%가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화려한 한복을 빌려 입고 경복궁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고궁박물관에도 몰려들고 있다. 반면 ‘국립중앙’ 이름을 단 대전 한국과학기술사관엔 한 달 평균 1만7000명이 찾는다.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사실상 건물만 남아 텅 빈 우리 궁궐의 모습이 떠오른다. 임진왜란과 대화재, 일제강점기 수탈 등의 아픈 역사 탓이겠지만 검증된 복원품이 있는데도 진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한 탓도 크겠다. 옥루가 들어섰던 흠경각은 경복궁 내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 바로 옆에 있었다. 임금이 직접 옥루의 작동을 살피고, 시간과 천문 현상을 보고받았다. 조선시대 국가 표준시계였던 자격루는 경복궁 경회루 남쪽 보루각에 있었다. 자랑스러운 국가문화 유산이라도 진품이 아니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워싱턴DC와 베이징의 한복판에 있는 그들의 과학관을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