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은실(장혜진)이 해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눈 앞에 알 수 없는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하민(최우식).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고, 숫자가 0이 되면 엄마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하민은 엄마를 지키기 위해 온갖 핑계를 대가며 엄마가 해준 밥을 피하기 시작한다. 엄마는 그런 아들의 ‘돌변’에 속상하기만 하다.
영화 ‘넘버원’(11일 개봉)은 판타지 설정의 영화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
영화 ‘거인’ ‘여교사’ 등에서 인물의 흔들리는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해온 김태용(39) 감독의 신작으로, 일본 작가 우와노 소라의 소설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를 원작으로 했다.
장혜진(51)과 최우식(36)이 영화 ‘기생충’ 이후 다시 모자 관계로 만났고, 김 감독과 최우식은 ‘거인’ 이후 12년 만의 재회다.
최우식은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소용돌이 치는 내면 연기로 하민의 복잡한 속내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장혜진은 남편과 장남을 각각 암과 사고로 잃은 고된 삶 속에서도 하민을 위해 꿋꿋이 살아가는 현실적인 엄마의 얼굴을 섬세하게 빚어낸다.
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장혜진은 “힘든 일을 겪고도 좌절하지 않고 웃으며 다시 일어나는 은실의 오뚜기 같은 모습에 매료됐다”며 “집밥을 먹지 않는 아들 때문에 속상하지만, 담담히 받아들이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 엄마들 같았다”고 말했다.
운명의 장난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하민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감정 신에선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촬영 전에 펑펑 울어 눈물샘을 마르게 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숫자는 판타지지만, 내 엄마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일깨워주더군요. 부모님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됐으면 합니다.”
계속 엄마 연기를 하고 싶다는 그는 “같은 엄마 역할도 처한 상황과 캐릭터가 다르기 때문에 재미를 느낀다”면서 “끊임없이 변주해가며 새로운 엄마의 얼굴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 만난 최우식은 호평 받았던 ‘거인’ 때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감정 연기와 부산 사투리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주저했지만, “내게 어울리는 쉬운 캐릭터만 택했던 그간의 필모그래피에서 벗어나 도전적인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기생충’ 때부터 장혜진을 어머니라 불러왔다는 그는 “앙상블 연기 위주의 ‘기생충’ 때와 달리, 이번 영화에선 1대1 신이 많기 때문에 많은 대화와 감정 교류로 더욱 친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판타지 요소가 있지만 인물들 만큼은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면서 “하민이 너무 어둡게 보이지 않도록 엄마의 집밥도 능글맞게 피하는 등 톤 조절에 힘썼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결코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엄마가 해준 집밥처럼 담백하게 전달한다. 최우식과 실제 어머니의 사진 등 부모 자식 간의 소중한 순간들이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흐르며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계절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걸 잊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저도 그랬고요. 부모님과의 추억을 사진보다 동영상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