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사이(師承)는 아니지만 나는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박시인(朴時仁) 교수와의 인연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 대학출판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신입생을 위한 고전 백선(百選)의 선정과 필자 섭외를 맡았다.
나는 먼저 박시인 교수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넣고 원고 청탁을 위해 뚝섬 자택을 찾아뵈었다. 취지를 설명했더니 박 교수의 말씀인즉, “나라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보다 먼저 권할 책이 있소.” “그게 뭔가요?”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입니다.” 나는 당황했다. 내가 처음 들어 본 책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박 교수가 기독교인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학교에 돌아와 편집회의에서 그 안건을 보고했다가 한마디로 거절되었다.
보에티우스(480?~525)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후손으로 학식과 덕망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는 30대에 집정관과 원로원의원을 지냈고 뒷날 두 아들이 또한 집정관이 되었다. 그는 플라톤의 이상주의적 정의를 로마에 구현해보고 싶었던 마지막 철학자요, 시인이자, 정치가였다. 황제 테오도리쿠스도 그를 신임했다. 그러나 그는 부패한 로마의 정가에 정적이 많았고, 아리아교도인 황제가 가톨릭 신자인 그를 혐오했다.
보에티우스는 끝내 불의한 정적의 공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사형 판결을 받은 다음 롬바르디아의 파비아로 유배되었다. 세속의 온갖 부귀공명을 모두 누리다가 이제 죽음을 기다리며 옥 창 너머로 아들을 보듬으며 아픔을 달랬다.
삶을 되돌아보니 인생에서 누린 극단의 행복과 나락으로 떨어진 불행을 상쇄하면 세상 누구나 다 같더라는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그는 불의한 행복보다는 정의로운 죽음을 택하되 운명과의 투쟁에서 역경을 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것이 쉽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