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3월 26일, 명품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가 뉴욕타임스에 이례적인 광고를 실었다. 광고는 “귀금속인 은을 누군가 매점매석해 아기용 수저와 티스푼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해악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월가 투자자들은 그 ‘누군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은을 쓸어담아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고 있던 헌트 형제였다. 1974년 석유재벌 해럴드슨 헌트가 별세하자 막대한 유산을 상속한 삼 형제 중 두 아들이 은 매입에 나섰다.
이들은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의 종료를 선언하자 달러 가치 폭락을 예측했다. 오일쇼크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물가가 두 자릿수로 상승하자 확신은 강해졌다. 화폐 가치 하락에 대한 대안으로 은을 선택했다.
1965년 정부가 은화 주조를 중단하자 은이 본격적으로 상품으로 거래되었다. 그전까지 미국 정부는 주조대상인 은 가격 상한선을 온스당 1.29 달러로 제한했다. 하지만 광학필름 등 산업재 수요가 급등해 내재가치가 공식가격을 뛰어넘었다. 은화를 녹여 실물로 보유하는 경우도 늘었다. 1974년 은 가격은 온스당 5달러를 넘어섰다.
전설적 투자자 워런 버핏도 1960년대 후반 은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펀더멘털을 보고 은을 사 모았다. 그는 몇 배의 이익을 거두었다. 헌트 형제는 가족 자본까지 끌어모아 약 1억 온스의 은을 매수했다. 전체 민간 보유 물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더불어 파생상품인 은 선물 계약까지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1980년까지 이들이 매입한 은 포지션 총액은 45억 달러에 달했다. 설상가상, 헌트 형제는 거래소 등에서 투자금을 차입해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켰다. 헌트 형제가 실제 투자한 돈은 10억 달러에 불과했다. 헌트 형제가 보유한 은 선물 매수 포지션은 뉴욕 상품거래소(COMEX) 전체의 69%에 이르렀다. 개인이 은 가격 방향을 통제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1980년 1월 은 가격은 마침내 온스당 48달러로 치솟았다. 수년 만에 몇 배가 부풀려졌다.
티파니의 뉴욕타임스 광고가 게재된 다음 날, 상품거래소는 새로운 은 선물 거래 규제를 발표했다. 이 규제를 통해 거래소는 은 매수 포지션의 청산만 허용하고 신규 매입을 금지했다. 선물 거래에 필요한 증거금 요건도 대폭 강화했다.
거래 제한 충격으로 은 가격은 온스당 11달러로 급락했다. 목요일의 폭락으로 은 시세의 절반이 하루 만에 사라졌다. 헌트 형제는 17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펀더멘털에 투자한 버핏은 큰 수익을 남겼지만, 가격 움직임에만 집중했던 헌트 형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오래된 사건이지만, 교훈은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