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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의 마켓 나우] 같은 은 매입, 엇갈린 결말

중앙일보

2026.02.0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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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1980년 3월 26일, 명품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가 뉴욕타임스에 이례적인 광고를 실었다. 광고는 “귀금속인 은을 누군가 매점매석해 아기용 수저와 티스푼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해악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월가 투자자들은 그 ‘누군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은을 쓸어담아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고 있던 헌트 형제였다. 1974년 석유재벌 해럴드슨 헌트가 별세하자 막대한 유산을 상속한 삼 형제 중 두 아들이 은 매입에 나섰다.

이들은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의 종료를 선언하자 달러 가치 폭락을 예측했다. 오일쇼크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물가가 두 자릿수로 상승하자 확신은 강해졌다. 화폐 가치 하락에 대한 대안으로 은을 선택했다.

1965년 정부가 은화 주조를 중단하자 은이 본격적으로 상품으로 거래되었다. 그전까지 미국 정부는 주조대상인 은 가격 상한선을 온스당 1.29 달러로 제한했다. 하지만 광학필름 등 산업재 수요가 급등해 내재가치가 공식가격을 뛰어넘었다. 은화를 녹여 실물로 보유하는 경우도 늘었다. 1974년 은 가격은 온스당 5달러를 넘어섰다.

전설적 투자자 워런 버핏도 1960년대 후반 은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펀더멘털을 보고 은을 사 모았다. 그는 몇 배의 이익을 거두었다. 헌트 형제는 가족 자본까지 끌어모아 약 1억 온스의 은을 매수했다. 전체 민간 보유 물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더불어 파생상품인 은 선물 계약까지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1980년까지 이들이 매입한 은 포지션 총액은 45억 달러에 달했다. 설상가상, 헌트 형제는 거래소 등에서 투자금을 차입해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켰다. 헌트 형제가 실제 투자한 돈은 10억 달러에 불과했다. 헌트 형제가 보유한 은 선물 매수 포지션은 뉴욕 상품거래소(COMEX) 전체의 69%에 이르렀다. 개인이 은 가격 방향을 통제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1980년 1월 은 가격은 마침내 온스당 48달러로 치솟았다. 수년 만에 몇 배가 부풀려졌다.

티파니의 뉴욕타임스 광고가 게재된 다음 날, 상품거래소는 새로운 은 선물 거래 규제를 발표했다. 이 규제를 통해 거래소는 은 매수 포지션의 청산만 허용하고 신규 매입을 금지했다. 선물 거래에 필요한 증거금 요건도 대폭 강화했다.

거래 제한 충격으로 은 가격은 온스당 11달러로 급락했다. 목요일의 폭락으로 은 시세의 절반이 하루 만에 사라졌다. 헌트 형제는 17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펀더멘털에 투자한 버핏은 큰 수익을 남겼지만, 가격 움직임에만 집중했던 헌트 형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오래된 사건이지만, 교훈은 새롭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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