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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필향만리’] 能近取譬(능근취비)

중앙일보

2026.02.04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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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2024년 3월 11일자 ‘필향만리’에서 “능히 가까이서 취하여 비유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인(仁)을 행하는 방법이다”라는 뜻의 공자말씀 ‘능근취비(能近取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인을 행하게 하는 효력을 가진 말은 형이상학적 전문 담론이 아니라, 가까이서 찾은 최적 비유의 쉬운 말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옛 책 중에는 황석공(黃石公)의 『소서(素書』, 편저자를 알 수 없는 『증광현문(增廣賢文)』,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 등 ‘능근취비’의 효력을 가진 명언집 성격의 책이 많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한때 추적(秋適)이 편간했다고 알려졌던 『명심보감』 외에 이런 부류의 책이 거의 없다. 엄격한 신분사회를 주도한 조선의 양반들은 지식을 독점한 채 성리학적 전문 담론에 몰두했을 뿐, ‘능근취비’의 명언집을 엮어 대중과 공유할 생각은 거의 하지 않은 것 같다.

能:능할 능, 近:가까울 근, 取:취할 취, 譬:비유할 비. 능히 가까이서 비유를 취할 수 있다면. 29x70㎝.
AI의 말을 듣느라 쫓기듯이 사는 이 시대야말로 ‘능근취비’의 쉽고 감동적인 사람의 말이 필요하다. 풍요와 과학의 힘이 인류를 복되게 했다지만, 만약 소크라테스·부처님·공자님·예수님 등의 귀한 말씀이 없었다면 인류는 진즉에 자멸했을지도 모른다. 말이 생명이다. AI 시대가 진화할수록 ‘능근취비’의 사람 말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지난주로 『논어』 말씀 연재를 마치고 금주부터는 매주 목요일에 더욱 평범한 ‘능근취비’의 명언을 모은 『증광현문』을 소재로 ‘필향만리’를 이어가고자 한다. 한 글자씩 한자를 익혀가며 읽다 보면, 삶의 지혜 터득뿐 아니라, 학생들의 어휘력과 문해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의 애독을 바란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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