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을 대상으로 전대미문의 도발을 감행했다. 베네수엘라의 강권 통치자 니콜라스 마두로를 생포하고, 나토(NATO) 동맹국인 덴마크로부터 그린란드를 가져오겠다며 군사 옵션까지 고려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미국 내에서는 미네소타에서 평화시위를 벌이던 시민 2명이 이민세관집행국(ICE) 요원에게 살해당했다. ICE는 또 이탈리아 동계 올림픽을 감시하겠다며 요원들을 파견했다. 유럽의 반(反)트럼프 시위는 미네소타 시위만큼이나 격렬했다.
미국 없는 안보 논의 촉발됐지만
독자적인 방위 체제 구축엔 한계
동맹은 트럼프 이후에도 지속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의 분노는 임계치까지 치솟았다. 다보스 포럼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강대국의 괴롭힘을 비판하며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은연중에 트럼프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동일시하며 캐나다와 같은 중견국들이 결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명의 바이든 행정부 출신 국가안보 전문가도 포린 어페어즈 1월호에서 비슷한 언급을 했는데,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동맹국들은 이제 미국을 제외한 ‘안보 플랜 B’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강변했다.
트럼프 때문에 미국 주도의 동맹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논쟁이 촉발된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견국들이 미국을 배제하고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결속한다는 이야기는 환상에 가깝다. 실제 카니 총리나 포린 어페어즈 기고자들 모두 실행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의 플랜 B도 그럴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먼저 트럼프의 광기 어린 발언과 SNS 게시물에 기반해 장기 전략을 수립할 수 없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소동 직후 주식시장과 공화당 의원들의 반발이 나오자 트럼프는 바로 물러섰다. 트레이드 마크인 ‘충격과 공포’ 정치를 멈출 가능성은 낮지만 유사 사건이 반복될수록 여론과 정치권의 반응도 더욱 악화될 것이다. 미국 정치는 미국과 동맹과의 연대를 침식하는 외교정책을 장기적으로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미국의 여론은 동맹국 편이지, 동맹을 공격하는 트럼프의 편이 아니다. 한국, NATO, 일본, 호주와의 동맹에 대한 지지율은 트럼프 행보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덕분에 여전히 높게 유지되고 있다. 트럼프가 캐나다 병합을 위협했을 때 미국인의 85%는 캐나다를 좋아한다고 답했고, 이 수치는 트럼프 지지율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물론 미국인들은 동맹국들이 방위를 위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지만 동맹국을 괴롭히는 것에 찬성하지는 않는다.
셋째, 비용과 리스크 때문이다. 카니 총리는 기립 박수를 받았지만, 현실을 보면 캐나다의 1인당 국방예산은 미국에 비해 너무 낮다. 미국 없이 캐나다 수호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NATO 사무총장이 경고했듯이 유럽 역시 미국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다. 물론 유럽과 캐나다가 국방비를 증액하고 있지만 독자적인 군사 행동이 가능한 수준에 미치려면 한참 멀었다. 결국 복지를 희생해야 하는데 과연 국민이 이를 지지할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기존 동맹 네트워크가 이미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군은 그 어느 때보다 동맹국들과 통합돼 있고 서로에 대한 의존성이 매우 높다. 호주의 오커스(AUKUS), 일본 군 지휘 통제 체계의 현대화, 한미연합사령부의 강력한 연합은 동맹국 군대들이 자율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미국과의 상호운용성 강화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동맹국은 자국 내 국방 혁신을 통해 역량 강화를 원하지만, 미국으로부터의 독립보다는 미국과의 집단 방위체제가 훨씬 저렴하고 효과적인 선택지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미국이 까다로운 상대라고 해도 결코 개별적으로 중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동맹국들엔 트럼프의 변덕을 관리하는 것이 미국 없는 새로운 안보체제를 구축하는 것보다 나은 대안이다. 국방비 증액, 국방 생산 및 혁신의 현지화, 동맹국 간 연계 강화와 같은 헤징은 설령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미국 동맹 체제에 유익하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플랜 B’가 아니라 ‘강화된 플랜 A’일 뿐이다. 트럼프가 동맹 체제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동맹 체제는 트럼프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동맹은 미국 안보에 있어 필수 요소이며 미국민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