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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보릿고개…제조업 ‘좋은 일자리’ 6만6000개 사라졌다

중앙일보

2026.02.0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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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32)씨는 1년간의 구직 끝에 최근 경기도의 한 중견기업에 안전관리자로 취업했다. 그는 “전기기사와 산업안전기사 등 3개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대기업 제조업 정규직 일자리는 거의 없어 바늘구멍”이라며 “대부분 채용 공고가 한 명 정도만 선발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기술직(생산직)을 지난해 500명, 올해 300명 선발한다. 과거 한 해 1000명씩 채용하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2023년 이전 약 10년간 채용하지 않다가 노사협의를 거쳐 재개했지만, 이후에도 소규모 채용에 그치고 있다. ‘킹산직’으로 불릴 만큼 선호도는 여전히 높아 경쟁률은 수백 대 1에 달한다.

갈 곳 없는 청년 “자격증 3개도 취업 어렵다”
한국 일자리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업 취업자가 빠르게 줄고 있다. 특히 청년들이 선호하는 ‘대기업 정규직’ 등 양질의 일자리 중심으로 사라지고 있다.

4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제조업 취업자는 2022년 450만3000명에서 2023년 446만1000명, 2024년 445만5000명, 지난해 438만2000명으로 연이어 감소했다. 3년 새 줄어든 일자리는 12만 개가 넘는다. 월별 기준으로도 제조업 취업자 수는 18개월 연속 감소세다.

김경진 기자
문제는 ‘좋은 일자리’ 중심으로 줄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데이터처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취업자 감소는 정규직에 해당하는 상용직 근로자에게서 가장 두드러졌다. 상용직 근로자는 2022년 366만3073명에서 3년 연속 줄어 지난해 359만6343명이었다. 이 기간 6만6730명 감소했는데, 일용직·임시직 등 다른 근로자 유형보다 많은 인원이 줄었다.

차준홍 기자
같은 기간 사업장 규모별로는 30~99인 중소·중견 제조업 사업장 취업자가 95만7083명에서 88만5545명으로 7만1538명 줄며 감소 폭이 가장 컸다. 2022년 92만2011명이던 300명 이상 대형 제조업 사업장 취업자도 3년 연속 쪼그라들어 지난해 90만3049명이었다. 이 기간 대기업 제조업 취업자가 1만8962명이 줄었다는 의미다. 반면에 1~4인 등 영세한 소규모 제조업 취업자만 같은 기간 61만6784명에서 65만760명으로 늘었다.

차준홍 기자
전문가들은 최근 제조업 성장이 고용 유발 효과가 낮은 반도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자동화·기계 도입도 대기업 위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아틀라스 등 휴머노이드 로봇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도입될 가능성이 크고, 미국에서도 한국 대기업들에 자국 내 제조업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장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며 “해고가 어려운 한국 노동시장 특성상 기존 인력의 ‘출구’는 서서히 좁아지겠지만, 신입 채용과 같은 ‘입구’는 훨씬 가파르게 좁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 부담은 청년층에 집중되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김유빈 연구위원은 “제조업이 청년 일자리에서 중요한 이유는 ‘숙련’이 가능한 분야이면서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일자리이기 때문”이라며 “20대 청년들은 제조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30대에 들어서면 제조업이 주요 취업처 중 하나가 되는데 이 경로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사라지는 ‘좋은 일자리’를 다시 되돌리는 건 현 산업 구조상 어렵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 등 전 세계 ‘제조업 국가’가 공통으로 겪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제조업과 청년취업 강국으로 평가받는 독일은 모범 사례로 꼽힌다. 독일은 인공지능(AI) 시대에 대응해 ‘계속교육·직업역량개발 2030(Weiterbildung 2030)’을 제시하며 고용정책의 구조적 전환에 나섰다. 독일 정부는 청년 ‘취업’이 아니라 ‘교육’을 정책의 전면에 내세웠다.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초점도 ‘일자리’나 ‘취업’에서 ‘역량’으로 옮겼다. 입사 직후는 물론 입사 이전 단계부터 국가가 개입한다. 노동시장 진입 가능 연령이 되면 입사 전이라도 ‘학습계좌’를 개설해 현재 역량과 부족 역량, 향후 전환 가능 직무 등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반면에 한국은 재교육이 주로 실직 이후에 이뤄지는 구조다.

독일처럼 ‘전생애 역량 개발’ 구조적 전환을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독일은 청년을 ‘전환 위험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집단’으로 정의한다”며 “과거처럼 전형적인 일자리가 대규모로 만들어지길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AI 시대의 청년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직장이나 직업에 적응하거나 창업에 나서야 하는 세대”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지원 방식도 일자리를 만들거나 찾아주는 데서 벗어나 적극적인 ‘전 생애 역량 개발’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쉬었음 청년’이 7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정부도 이달 범부처 차원의 청년종합대책을 내놓는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업이 미래 성장의 중심이 되고 있는데 숙련공이 없는 상황”이라며 “조선업 등 제조업과 건설업을 청년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대책 방향을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채용보조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중소벤처기업부의 스마트공정, 산업통상부의 산업단지 혁신 등 범부처로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김연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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