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언어 순발력은 국민 MC 유재석급이다. 장차관들이 대통령의 유머 감각을 따라가느라 헉헉댄다. 대통령 업무보고, 국무회의, 수석보좌관 회의가 완전히 공개되면서 증거 영상은 쌓이고 있다. 이 대통령의 화려한 언변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복싱 영웅의 풋워크와 펀치를 보는 것 같다. 지난 3일에도 명장면이 펼쳐졌다. 뜨거운 현안인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에 대한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다. 이 대통령은 구윤철 경제부총리의 사소한 언어 습관을 정책 메시지로 치환하는 역대급 순발력을 선보였다.
‘죄명’도 활용한 이재명식 유머
친밀감 주지만 방어기제 역할
방탄 입법 메시지로 읽힐 수도
▶구윤철 부총리=“이번이 ‘아마’ 중과를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아마’ 이런 기회를 이용해 국민이 중과받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장관님, 말씀 도중에 ‘아마’라는 표현을 두 번 하셨거든요. ‘아마’ 없습니다.”
양도세 중과를 세 번이나 유예한 전례는 끝났고 이번엔 확실히 시행하는 것이어서 ‘아마’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구 부총리가 습관적으로 ‘아마’를 한 번 더 언급하자, “아마 하지 말라니까요”라고 쐐기를 박았다. 좌중에선 폭소가 터졌고, 메시지는 더욱 선명해졌다. 아마 구 부총리에겐 당분간 ‘아마’가 금지어일 것이다.
이 대통령의 언어 순발력은 자신을 주제로 삼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이른바 ‘자학(自虐) 개그’에 탁월하다. 3일 업무보고에서도 그랬다. 중소기업을 위한 기술 무료 지원 방안을 논의하다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자발성을 전제로 대기업 등이 참여하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자 그를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산업부 장관님이 세상 험한 것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 정부 업무와 관련해 기업의 기부를 받으면 지금 검찰 입장에서는 제3자 뇌물죄입니다. 감방에 갑니다.” 비슷한 대안을 제시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도 “이재명 사례에 의하면 제3자 뇌물로 기소입니다” 라며 웃었다. 성남 시장 때 일을 빗댄 블랙 유머다. 당시 성남FC 구단주였던 이 대통령은 시의 인허가가 필요한 기업들이 180억원을 구단에 지원하는 데 관여했다. 윤석열 정부의 경찰과 검찰은 그 과정에 제3자 뇌물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2023년 기소했다. 이날 업무보고에서 중소기업 지원을 활성화하려는 장관들의 선의와 열정을 이재명 성남시장과 연결 지어 억울함을 호소한 셈이다.
지난해 12월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교육부 업무보고에서도 자학 개그가 작렬했다. 한국고전번역원장이 최근 학생들의 한자 실력 부족을 지적하며 “이 대통령 이름의 한자 ‘있을 재(在)’ ‘밝을 명(明)’도 잘 모른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그래서 ‘죄명’이라고 쓰는 사람이 있지 않냐”고 했다. 사법 리스크를 부각하는 멸칭마저 거리낌 없이 개그에 활용한 것이다. 신년 기자회견에선 검찰 개혁에 대한 질문에 “‘진짜 마녀’인 검찰에 가장 많이 당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제가 무죄 받은 것도 많아요. 그래서 살아서 여기까지 왔죠”라고 했다. ‘유머의 원천은 기쁨이 아닌 슬픔’이라고 했다는 마크 트웨인이 떠오른다.
자학 개그엔 이중성이 있다. 인간미를 극대화해 친근감을 높이지만 자신에 대한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어 기제이기도 하다. 빵 터진 자학 개그의 뒷맛이 씁쓸하기도 한 이유다. 최고 권력자의 꾸준한 자학 개그는 여당 지도부에 어떤 메시지로 전달되고 있을까. 마침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가 3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시대정신’을 내세워 “3대 사법개혁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겠다”고 했다. 3대 법안인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제, 법왜곡죄는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해소를 위한 ‘방탄 입법’으로 의심받은 사안들이다. 대통령의 개그를 여당의 입법과 연결하는 건 견강부회일까. 말 그대로 ‘개그는 개그일 뿐’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