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오해를 부를까 봐 미리 말하자면 필자는 1주택자이고 그중에서도 장기 보유자다. 집을 더 살 여력도 없고, 설사 여력이 있다 한들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니 집값이 빨리 잡혀 시장이 안정되기를 바랄 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악귀에 영혼을 홀린 사람이 아니란 이야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결기에 찬 SNS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모두가 반신반의하던 코스피 5000도 보란 듯 해냈는데 부동산쯤이야 못 잡겠느냐는 자신감도 읽힌다.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이 다 올라도 한국은 올라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절박함을 떠오르게도 하지만, 자신감과 의지만으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게 부동산이란 건 이제 우리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됐다.
아파트는 집이자 투자의 대상
모든 다주택자 악마로 몰지 말고
개인의 이익추구 욕망 인정해야
제대로 작동하는 정책 나올 것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끝내기로 한 결정은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다. 단기적으로는 매물을 유도해 부동산 오름세를 꺾어보자는 목적일 것이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다주택자의 부동산 이익으로 대표되는 불로소득은 고율의 세금으로 환수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는 민주당 정부의 기본 철학이 반영된 정책일 것이다. 부동산(不動産)은 그 이름처럼 수요가 있는 곳으로 옮겨지지도 않고, 신규 공급과 수요 사이엔 시차가 발생한다. 더구나 토지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과 달리 공급 총량이 한정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주무장관이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 만들겠지만…”이라고 한 건 말 자체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 남들보다 많은 토지나 부동산을 소유한 다주택자에게 적정한 범위 안에서 규제를 가하고, 그 정도가 문제일 뿐 상대적으로 많은 세금을 내게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모든 다주택자를 무주택 청년들의 피눈물을 짜내는 악마로 보는 대통령의 인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더러는 정부 정책의 빈틈을 노리고 금융 공학을 총동원해 아파트 사재기로 시장을 교란하는 탐욕의 화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복수의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무주택자에게 세를 주고 적정한 수준의 임대료를 받고 그에 따른 세금을 꼬박꼬박 낸다면, 임대 수입과 가치 상승이란 개인의 투자 목적과는 별개로 사회적으로는 주거 사다리의 일익을 담당하는 순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다주택자의 두 얼굴이다.
“이번이 마지막 탈출 기회”라는 대통령의 SNS에 그럼 청와대 참모들은 뭐냐는 반론이 쏟아졌다. 전국적으로 230만명이 넘는다는 다주택자를 모두 악마로 볼 수 없듯, 청와대 참모들을 집이 두 채 이상이란 이유만으로 악마로 볼 순 없다. 약탈적 투기꾼이 아닌 다음에야 딱히 그들만을 비난할 이유도 없다. 만일 그들이 정녕 악마라면 대통령은 아무런 검증도 없이 악마를 참모로 뽑아 썼다는 이야기가 되고, 그들이 악질 투기꾼이 맞다면 5월 9일 이전에 집을 내놓더라도 참모로 계속 기용해선 안 된다. 악마가 개과천선했다고 대통령 참모로 쓸 수는 없지 않나. ‘집’과 ‘직’ 의 선택 갈림길에서 청와대 참모 일부가 집을 내놓았다는 소식은 그래서 ‘웃픈’ 소극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우린 그런 소극을 여러 편 보았고, 그 효과와 결말이 어땠는지도 알고 있다. 엊그제 참모 한 사람은 강남 집은 놔두고 용인 집을 내놨는데, 대부분의 다주택자들이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강남 집값에 주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고, 이론적으로는 강남과 비강남의 가격 차만 더 벌리는 효과가 생긴다.
선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건 종교나 윤리의 영역에선 효용이 있겠지만, 현실 정치나 경제활동을 보는 기준으로는 잘 맞지 않는 법이다. 만인의 이익이 걸린 부동산만큼 정책과 정치가 뒤엉키기 쉬운 분야도 없다.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라고 정책 설계자들은 강조하고 싶겠지만 현실의 아파트는 집인 동시에 욕망의 대상이며 값이 늘 변하는 상품이고, 그래서 투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이 현실을 인정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업자, 빵집 주인들의 착한 마음씨 덕분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세상은 선인(善人)들의 선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익 추구에 의해 굴러간다는 뜻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 추구 행위를 악마로 보면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동산에 대한 욕망도 달리 볼 이유가 없다. 소수의 악인, 그보다는 많은 수의 선인,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범인(凡人)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세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