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의 관세 재인상을 막기 위해 연이어 고위급 당국자를 워싱턴 DC로 보내 설득전에 나섰으나, 미국의 기류 변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 관세율 인상을 위한 연방 관보 게재는 사실상 시간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정부도 ‘게재 저지’에서 ‘실제 발효 시점 유예’ 등을 통한 시간 벌기로 대응의 무게 중심을 옮긴 분위기다.
지난달 29일 방미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카운터파트인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지 못 하고 릭 스위처 부대표만 면담한 채 3일(현지시간) 귀국길에 올랐다. 미 측은 인도와의 관세 협의 등을 이유로 일정을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여 본부장은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관보 게재 절차에 대해 미 부처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미국 측이 우리의 시스템이 (자신들과) 다른 부분을 이해 못 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미 정부 실무선에서 문안 작업은 이미 완료됐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상무부, 법무부, 무역대표부 등 관계 부처 간 조율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일 워싱턴에서 열린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간의 회담에서도 관세와 관련한 진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국의 보도자료는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외교부는 “조 장관이 한·미 간 관세 합의와 대미 투자 이행을 위한 우리의 국내적 노력을 설명했다”고 부각했지만, 미 국무부 자료엔 관세라는 단어 자체가 빠졌다.
대신 국무부는 “양측은 원자력 발전, 원자력 추진 잠수함(핵잠), 조선업 그리고 미국의 핵심 산업 재건을 위한 대한민국의 투자 확대에 대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만 밝혔다. 한 소식통은 “결국 대미 투자나 빨리 이행하란 게 미국의 입장인 셈”이라며 “다만 관세 재협상 국면에서 안보 협상 합의물인 핵잠 도입 등에는 영향이 없다는 걸 확인한 정도가 수확이라면 수확”이라고 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관보 게재를 되돌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참모들도 결국 ‘미생(未生)’ 아니겠나”며 “실무진으로서 일단 이행 절차를 밟지 않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 측은 당초 지난달 26일 트럼프의 관세 재인상 발언 직후 관보 초안 마련 사실을 정부에 통보하며 실행 시점을 “수 주 이내(matter of weeks)”로 표현했다고 한다. 애초부터 한국의 국내적 상황과 무관하게 미국의 행정적 절차는 진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정부의 전략도 입법과 후속 협상 시간을 벌기 위한 ‘발효 시점 지연’이라는 차선책을 추진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관련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관보에 게재되더라도 발효 시점을 따로 명기하거나 ‘대미투자법이 처리되면 다시 관세를 인하한다’ 등 문안을 달아 사실상의 조건부 시행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