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US오픈 당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무릎은 ‘운동 불가능’의 영역에 있었다. 수술대에 올랐던 그의 왼쪽 무릎은 전방 십자인대가 형체도 없이 다 닳아 없어진 상태였고, 정강이뼈에는 두 군데나 피로골절이 있었다. 의사들은 “인대가 없으니 더 나빠질 것도 없지만, 통증을 견디는 것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즈는 통증과 부상을 구분했다. 다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면 경기할 수 없지만, 아픈 거라면 뭐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무릎 인대가 없는 것은 부상이 아니라 그냥 통증이었다.
US오픈은 전통적으로 가장 길고 어려운 대회다. 대회장 토리파인스 골프장은 당시 기준 역대 메이저 최장 길이(7643야드)에 악명 높은 깊은 러프로 무장했다. 우즈는 스윙할 때마다 무릎이 뒤틀리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고, 때로는 클럽을 지팡이 삼아 주저앉기도 했다.
퍼트감이 떨어질까 봐 진통제를 먹지 않고 소염제만으로, 연장전 19홀 포함 91홀의 사투를 벌여 결국 우승컵으로 보상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인간의 위상을 넘어 불멸의 존재가 됐다”고 평했다.
2026년 밀라노의 차가운 설원 위에서 린지 본이 그와 비슷한 무모해 보이는 고집을 부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본은 안개 낀 스위스 알프스에서 열린 월드컵 알파인 활강 도중 점프 후 착지 과정에서 넘어져 왼쪽 무릎을 크게 다쳤다. 십자인대 완전 파열과 반월상 연골 손상이라는 진단서를 받은 본은 “무릎 보조기를 차고서라도 올림픽에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무릎에 티타늄 인공 관절을 박고 은퇴 5년 만에 복귀하자마자 다시 가혹한 시련을 맞은 본은 “삶이란 본디 완벽할 수 없다. 나는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패를 가지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넘어진 횟수만큼 언제나 다시 일어섰던 나이기에, 지금의 이 시련 역시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다”라고 했다.
두 사람은 연인이었다. 2013년부터 2년여 뜨겁게 사랑했다. 우즈는 변장을 하고 스키장을 찾아 본을 응원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둘은 각종 부상으로 만신창이였지만 몸은 부러져도 정신력은 부러지지 않는 ‘독종’ 기질을 본능적으로 알아봤다. 그게 존경스럽다고 했다. 서로의 완벽주의에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2008년 US오픈에서 우즈는 성공했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이후 극심한 후유증과 수술을 반복하며 2019년 마스터스 전까지 무려 11년간 메이저 우승을 더하지 못했다. 본도 알프스의 가파른 내리막으로 기어이 발을 내딛고 있다. 그는 “상태가 안정적이고 힘이 느껴진다”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시선은 편치 않다.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PGA투어 82승을 한 골프 황제와 스키 월드컵 84승을 한 스키 여제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강인하고, 무모한 커플일 것이다. 결국 그들은 매우 비슷한 사람들이고, 그들을 갈라놓은 것 역시 그 기질이었다. 타인에게 내어줄 감정의 여백보다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 쏟아붓는 집념이 더 컸던 두 사람에게 평범한 연애는 불가능했다.
이제 사랑은 끝났고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고통은 어떤 것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본의 활강을 보면 사람들은 다시 우즈를 떠올릴 것이다. 그것이 스포츠 역사상 가장 지독한 연인이 서로를 존중하고, 기억하는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