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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남녀 소개팅에 7억 쏟은 지자체…"그런다고 애 낳겠냐" [90년대생 엄마가 온다]

중앙일보

2026.02.04 12:00 2026.02.0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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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서울시가 연 미혼남녀 만남 주선 행사 '설렘 in 한강' 진행 모습. 사진 서울시
육아 현장에선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이 출산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정작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공 소개팅’ 같은 보여주기식 대책에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출산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인 요인부터 개선해야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보건복지부의 ‘2025년도 지방자치단체 출산지원정책 사례집’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자체가 미혼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이른바 ‘소개팅 사업’에 투입한 예산이 총 7억3200만원(14건)으로 나타났다. 편성 예산 기준으로 전년 대비 사업비는 21.4%(1억2900만원), 사업 건수는 27.3%(3건) 급증했다.

            김영옥 기자
지난해 경기도 성남시는 소개팅 사업 ‘솔로몬의 선택’을 통해 성인 760명 만남을 주선하는 데 2억9400만원을 투입했다. 지자체 소개팅 사업 중 가장 많은 예산이다. 같은 해 경북도는 ‘연애캠프’ ‘청춘동아리’ 사업으로 310명의 만남을 주선했는데, 총 1억8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대구시도 소개팅 사업을 위해 5000만원의 예산을 새로 편성했고, 부산 동래구와 서울 관악구는 각각 1000만원, 3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소개팅 사업에 나섰다.

정책 효과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성남시는 2024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억8800만원을 소개팅 사업에 썼지만, 결혼까지 이어진 부부는 지난달 기준으로 14쌍에 불과했다. 서울시는 2023년 ‘서울팅’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8000만원을 추가경정예산으로 편성했다가 주민과 시의회 반발에 사업을 접었다. 최현선 명지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공공 소개팅은 지자체장이 주민에게 자신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벌이는 이벤트성 행사에 가깝다”고 짚었다.

           김영옥 기자
중앙정부도 저출생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보다 현금 지원 등 눈에 보이는 단기 정책에만 집중하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저출생 직결과제 예산은 전년 대비 13%(3조3000억원) 급증한 28조6000억원으로 전체 예산(88조3000억원)의 32.4%를 차지했다. 저출생 직결과제 예산은 전체 저출생 예산 중 부모급여·아동수당과 같이 직접 지출에 가까운 예산을 따로 분류한 것이다. 주로 현금성 지원이 많다. 저출생 직결과제 예산의 증가 속도는 같은 시기 전체 저출생 예산 증가율(6%)의 2배가 넘을 정도로 빠르게 늘었다.

육아 현장에서도 정부가 저출생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현금 지원성 대책에 치중한다는 인식이 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4년 둘째 이상을 추가로 출산한 25~44세 여성 265명을 대상으로 이전 출산 때보다 개선됐다고 느낀 정책을 조사한 결과 직장어린이집(31.5%)·유연 근무(36.9%)·산전후 휴가(38%) 등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정책은 만족도가 낮았다. 산모 70% 이상이 혜택이 커졌다고 느낀 정책은 출산장려금(79.5%)·양육수당(74.5%)·의료비 지원(71.1%) 등 현금성 지원뿐이었다.

            김영옥 기자
11월 결혼을 앞둔 30대 여성 김모씨는 “현금성 지원은 이미 임신을 결정하거나 출산한 사람들이 주로 관심 갖는 것”이라며 “직장이나 육아뿐만 아니라 집은 어떻게 할지, 어디서 살아야 할지 등 생각해야 할 게 셀 수 없이 많은데, 현금 얼마 준다고 애를 낳겠다고 결심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단기적인 대응책에 급급한 건 인구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못 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2005년 출범한 저고위는 각 부처의 저출생 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하지만 예산을 편성하거나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한 주형환 저고위 부위원장이 사퇴하면서 기관장 공백 사태를 맞았다. 대통령실 인공지능(AI)미래기획수석 산하 인구정책비서관은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공석이다.

지난달 서울 송파구의 한 어린이집 모습. 연합뉴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에코붐 세대의 가임기가 끝나면 또다시 인구 절벽이 찾아올 수 있는데, 출생률 증가세를 유지하기 위해선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구조 변화를 통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인구정책 컨트롤타워가 리더십 발휘해 일자리·주거·지역균형 등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오삼권.곽주영.김예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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