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던 성모(30)씨는 지난 2023년 일을 그만뒀다. 임신을 준비하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겼고, 출산 이후 육아를 감당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단 판단에서였다. 그는 “사명감을 가지고 하던 일이었지만 건강과 육아가 우선이라 어쩔 수 없이 퇴사를 결정했다”며 “과거보다 관련 제도도 많이 생기고 일·가정 양립이 어느 정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남편도 육아휴직 한 번 쓰려고 회사 눈치를 심하게 봐야 하는 걸 보니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속상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구가 많은 에코붐세대(1990년대 초·중반 출생자) 여성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출산 선택’ 흐름이 만들어지며 전체 출생률도 반등하고 있지만, 이를 공고한 상승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선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나 직장 내 인식 수준의 절대치가 여전히 높지 않고, 직장이나 지역별 격차도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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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여성 절반만 직장 유지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연구팀이 2024년 출산 경험 여성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출산 후에도 직장을 유지한 여성 비율은 52.7%로 절반을 겨우 넘긴 수준에 불과했다. 남성 배우자의 취업 유지 비율(92.4%)과의 격차도 여전히 컸다. 일을 그만둔 이유로는 ‘아이 맡길 곳이 없어서(26.3%)’ ‘일·가정 양립 제도 활용이 어려워서(24.8%)’가 주로 꼽혔다. 출산 후에도 일을 한 여성 중 ‘일·가정 양립 정도’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37.9%에 그쳤다. ‘규정에 있지만 신청하지 않는 게 관례라서’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했다고 답한 인원이 4명 중 1명(25.1%)에 달했다. 또 ‘육아휴직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해서(21%)’ ‘대체 인력을 못 찾아서(20.4%)’ 등의 이유로 육아 휴직을 못 쓴 사람도 적지 않았다.
출산 이후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결혼과 출산이란 선택지를 아예 배제하게 하는 핵심 요인이다. 사운드 디자이너로 일하는 조모(32)씨는 주변인들이 출산 이후 직장에서 자리 잡지 못하거나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비혼·비출산에 대한 신념이 공고해졌다고 했다. 그는 “20대까지만 해도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출산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 믿었지만 30대가 되며 생각이 바뀌었다”며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조차 정년이 짧아지고 40대에 벌써 권고사직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며 비출산으로 기우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아이 낳으면 뭘 준다’는 식의 정책이 많은데, 취업·주거 등 청년들의 안정적인 삶을 지원하는 게 출생률 증가에 있어 더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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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결심 여성, '대도시 거주·안정적 일자리·높은 경제 수준'
공공기관·대기업 등 여건이 비교적 잘 갖춰진 직장에 다니는 여성 위주로 출산을 적극 선택하는 흐름이 감지될 뿐,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자영업·프리랜서 등의 직업을 가진 여성들 대다수는 결혼·출산을 엄두 내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와 20·30대 여성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5년 이후 일·가정 양립이 주요 정책 의제로 부상하며 예산이 늘고 제도도 개선된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장시간 근로가 표준으로 여겨지고 유연한 근로문화도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라 정책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짚었다.
실제 보사연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24년 출생률 반등을 이끈 30대 ‘출산 결심’ 여성들은 대도시에 거주하며 정부 기관이나 대기업 등 안정적 일자리에 종사하고, 자신의 경제 수준을 ‘상~중’으로 분류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출산 선택에 나서는 집단이 이처럼 제한적이면, 반등 추세 역시 순식간에 다시 꺾일 수 있다. 출생아 수 증가를 놓고 축배를 들기엔 너무 이르다는 진단이 많은 이유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지속가능경제학과 교수는 “결혼·출산의 핵심 변수인 고용과 주거 안정성이 모든 청년이 체감할 만큼 개선됐다고 보긴 어렵다”며 “출산 장려에 국한할 게 아니라 교육·노동·주거·복지를 아우르는 장기적 인구정책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고학력과 안정적 직업을 갖췄더라도, 아이에 대한 높은 교육적 기대·기준으로 출산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아 이에 대한 장기적 대책도 필요하다. 지난 2018년 결혼한 뒤 8년째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 맞벌이 무자녀 부부)’로 지내는 직장인 장모(41)씨는 “어릴 때 국제학교에 다니며 부모로부터 많은 교육적 지원을 받았다”며 “우리는 아이에게 그 정도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출산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경쟁에 뒤처지지 않도록,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이 출산을 포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유해미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사회는 가족주의와 과열된 경쟁 구조 속에서 양육의 질에 대한 기대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인데, 특히 맞벌이 여성의 경우 자신이 양육에 충분히 관여하지 못해 아이가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을 크게 느낀다”고 진단했다.
아동과 여성 양육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출산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아동에 대한 사회적 배제의 실태와 대응과제(2024)’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생 이하 자녀가 있는 가구 구성원 446명 대상 조사에서 ‘공공장소에 자녀를 동반하는 경우 주변 사람의 눈치가 보인다’고 답한 응답자가 64.3%에 달했다.
이에 더해 지난 2015년 이후 심화한 젠더 갈등 등도 중장기적 출생률 하락에 영향을 미쳤단 분석이다. 비혼·비출산을 선언한 강모(33)씨는 “‘노키즈존’ 같은 사례를 보면 아이와 그 부모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게 느껴지는데, 국가에서 돈을 준다고 아이를 낳고 싶어지진 않을 것 같다”며 “사회적 인식 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유 연구위원은 “아동의 발달 특성상 부모가 아무리 노력해도 공공장소에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사회가 이해하고, 혐오 대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