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이 이례적으로 입찰방식 변경을 요청해 제동이 걸렸던 서울지하철 6·7호선의 신규전동차 입찰절차가 우여곡절 끝에 4일 사전규격공고를 시작으로 재개됐다.
앞서 조달청은 지난해 말 서울교통공사가 6·7호선의 노후전동차 교체를 위해 ‘최저가입찰’ 방식으로 의뢰한 신규전동차 376칸의 구매 건에 대해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으로 변경을 요청한 바 있다. 발주금액은 5900억원가량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서울시, 조달청과 협의해 기존 최저가입찰 방식을 적용하되 납기지연 방지를 위해 1단계 기술평가의 기준을 더 강화하고, 계약 뒤에도 공정관리를 더 철저히 하는 특별 조건을 붙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서울교통공사의 신규전동차 발주를 둘러싼 혼란은 일단락된 모양새이다. 하지만 철도업계에선 철도차량 제작업체인 다원시스의 무더기 납기지연으로 촉발된 열차 입찰 방식 논란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말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다원시스의 무더기 납기지연을 질책하며 강력한 대책을 지시한 바 있다. 다원시스가 따낸 철도차량 납품 계약은 모두 2단계 경쟁입찰(규격가격 동시입찰)이었다. 흔히 최저가입찰로 부른다.
이 때문에 납기지연 우려를 최소화하고, 더 높은 품질의 열차를 도입하기 위해선 그동안 대부분을 차지했던 최저가입찰 대신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입찰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협상에 의한 계약은 업체가 제출한 기술·가격제안서를 함께 평가해 높은 점수를 얻은 순으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뒤 협상이 마무리되면 낙찰자로 확정하는 방식이다. 코레일의 경우 기술평가를 80%, 가격은 20%를 반영한다.
일반적으로 기술력과 자본력이 상대적으로 탄탄한 대기업이 유리한 방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앞서 세차례 있었던 협상에 의한 계약은 모두 현대차그룹 계열인 현대로템이 따냈다고 한다.
반면 최저가입찰은 1단계로 품질, 기술력, 신용평가등급, 납품지연 여부 등에 대한 기술평가에서 85점 이상을 받아 통과한 업체 중에서 2단계로 입찰가격을 확인해 최저가를 쓴 곳을 낙찰자로 정한다.
이때 기술평가는 통과와 탈락 여부만 따진다. 중소 철도차량 제작업체인 우진산전과 다원시스가 전동차, ITX-마음 등을 수주할 수 있었던 게 이 방식 덕분이라는 평가다.
전문가들도 입찰 방식을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장호 한국교통대 철도인프라공학 교수는 “전동차나 일반열차도 지나치게 저가로 입찰하게 되면 저가 부품 사용 탓에 차량의 품질저하가 생긴다”며 “발주기관 입장에서 최저가입찰로 처음 차량구입비는 낮췄을지 몰라도 생애주기비용으로 보면 협상에 의한 계약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민규 한라대 철도운전시스템학과 교수도 “당장은 납품 단가를 낮추는 게 예산 절감 효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결국은 차량 유지보수 비용의 증가와 조기 폐차, 그리고 사고나 고장으로 인해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주영 한국교통대 교통정책학과 교수는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고속열차와 표준화가 이뤄진 일반전동차는 계약 방식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며 “협상에 의한 계약만 고수하면 대기업의 독점 문제나 가격 상승 등의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진혁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고속열차는 안정성과 기술력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기술력 차이가 크지 않은 전동차나 일반열차는 최저가입찰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 등 여러 철도 운영사들도 구매하는 열차에 따라서 두 가지 계약방식 중에서 선택하는 이른바 '투 트랙(TWO TRACK)' 방식을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다.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고속열차나 신기술을 적용하는 열차 구매 때는 협상에 의한 계약을, 전동차나 일반차량처럼 표준화돼있고 기술력 차이가 적은 분야는 최저가입찰을 적용하되 평가기준과 공정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강승모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과 교수도 “계약 방식도 중요하지만, 품질저하와 납기지연을 막기 위해선 발주부터 납품까지 발주처의 철저한 사전 관리·감독 체계 수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운영사 관계자는 “협상에 의한 계약 위주로 바꾸게 되면 경쟁 체제 이전의 현대로템 독점시대로 회귀할 거란 우려가 적지 않다”며 “독점의 폐해를 경험한 철도운영사들로서는 수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철도운영사들이 자체적으로 입찰방식을 결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도 “향후 발주 건은 중앙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그 방식에 따르기로 서울시, 조달청과 논의했다”고 밝혔다.
열차 입찰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늦어지면 발주가 지연돼 그만큼 노후차량 교체시기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국토부와 조달청 등 중앙부처에서 철도차량 입찰 방식에 대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