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금동대향로(국보) 속 피리와는 다른 형태다.”
이날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공개한 횡적(橫笛) 유물은 취공에 직접 입술을 대고 가로로 부는 소금 형태다. 숨을 불어넣는 부위에 겹서(일종의 리드)를 끼워 세로로 연주하는 피리(종적, 縱笛)와는 원칙적으로 다른 악기다. 연구소 측은 이해를 돕기 위해 ‘가로로 부는 피리’라는 표현을 썼다.
국내에선 처음 출토됐지만 일본에서는 대나무 관악기가 몇 번 나왔다. 미야기현 이치카와바시 유적에선 길이 34.8㎝의 완전한 형태의 횡적(지공 6개)이, 시미즈 유적에셔는 길이 30㎝의 횡적(지공 6개로 추정) 일부가 나왔다. 둘 다 9세기로 추정된다. 후쿠시마현 에다이라 유적에선 중간 부분이 떨어져 나간 8세기 횡적이 출토됐는데 복원 연구를 통해 길이 약 34㎝(지공 5개) 또는 36㎝(6개)로 추정됐다.
이번에 나온 관북리 횡적은 이러한 일본의 실물 사례에 앞서 7세기로 편년된다는 점에서 백제 악사들이 일본에 음악을 전래한 문헌 기록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일본후기(日本後紀)』의 809년 기록에는 ‘횡적, 공후, 막목, 무용 등 4명의 백제악사를 정했다(百濟樂師四人 橫笛空模莫目舞等師也)’고 나와 있고 법령을 엮어 모은 『유취삼대격(類緊三代格)』의 848년 기록에는 ‘백제악생을 스무 명에서 열세 명을 줄여 일곱 명으로 정하였는데 횡적생 한 명은 줄이지 않았다(百濟樂生甘人 減十三人, 定七人 橫笛生―人不滅, 莫牟生―人不滅, 輩篠生―人元二人)’고 돼 있다. 이를 통해 9세기까지 일본 궁중에서 백제 음악이 연주됐고 횡적이 중요한 악기였음을 알 수 있다.
현존 유물 중에 백제 악기가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된 백제금동대향로(부여 능산리 출토) 엔 다섯 가지 악기를 든 오악사가 묘사돼 있지만 이 중엔 횡적이 없고 피리만 있다. 다만 백제 유민이 673년에 제작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에 횡적을 연주하는 악사가 등장해 백제에선 가로·세로 관악기가 두루 쓰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