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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전 화장실 속 ‘백제의 피리’…부여 왕궁터 유물 쏟아졌다

중앙일보

2026.02.04 21:59 2026.02.0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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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사비 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에서 지난 2년간 총 329점의 목간과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橫笛, 가로 피리) 1점이 출토됐다고 5일 밝혔다. 사진은 악기 유물의 출토 당시 모습. 사진 국가유산청
1400년 전 ’백제의 소리‘를 유추할 수 있는 대나무 피리가 옛 사비(부여) 왕궁터에서 나왔다. 일부 훼손된 채 납작하게 눌린 상태로 발견된 곳은 당시 화장실로 추정되는 깊은 구덩이 속. 인근에선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도 무더기로 나왔다. 사비 천도 초기 백제의 행정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유물들이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부여 관북리 유적’에 대한 16차 발굴 조사로 목간 329점과 횡적(橫笛, 가로형 피리) 1점을 확보했다고 5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밝혔다. 횡적은 동반 유물의 탄소연대측정 결과 568~642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그간 중국 문헌으로만 전해졌던 삼국시대 관악기가 실물로 발견된 건 처음이다.

이날 연구소에서 공개된 횡적은 비록 찌부러지긴 했어도 입술을 대는 취공(또는 취구) 1개와 손가락을 얹는 지공 3개의 윤곽이 또렷했다. 한쪽 끝이 부러져 현재 남은 길이는 22.4㎝. 연구소 측은 삼국사기 기록에 따라 원래는 지공 6개가 뚫린 31~32㎝ 길이였을 것으로 보고 3D 측정값으로 만든 실물 크기 재현품도 선보였다. 국악기의 하나인 소금(小笒)과 비슷하면서도 취공 및 지공 위치가 다르다. 현장에서 재현품으로 청량한 음색을 뽑아낸 부여군충남국악단의 김윤희 연주자는 “소금보다 한 음계 반 정도 높고 음역 폭이 좁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사비 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에서 지난 2년간 총 329점의 목간과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橫笛, 가로 피리) 1점이 출토됐다고 5일 밝혔다. 사진은 악기 유물. 보존처리를 위한 안정화 작업 중이라 흰 천으로 부분부분 가려져 있다. 사진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사비 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에서 지난 2년간 총 329점의 목간과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橫笛, 가로 피리) 1점이 출토됐다고 5일 밝혔다. 사진은 악기 유물을 고증해 제작한 재현품 모습. 사진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부여 관북리 유적을 조사한 결과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가로 피리) 1점을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 사진은 악기 유물이 출토된 구덩이. 사진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백제 악공이 스스로 부러뜨린 걸까, 질투한 동료가 일부러 훼손한 걸까. 부러진 악기가 발견된 곳은 7세기쯤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당(朝堂, 왕과 신하가 국정을 논의하거나 국가적 행사를 여는 공간) 인근의 직사각형 구덩이(가로 2m, 세로 1m, 깊이 2m) 속이다. 이곳 유기물 분석에선 다량의 인체 기생충란이 검출됐다. 황인호 연구소장은 “구덩이에선 익산 왕궁리 유적 화장실터에서 출토된 (용변) 뒤처리용 나뭇조각과 똑같은 나뭇조각도 나왔다”면서 “조당에 부속된 화장실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큰데, 부러진 피리가 왜 이곳에서 나왔는지는 상상력과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국시대엔 볼일을 본 뒤 나뭇조각으로 항문을 닦고 이를 씻어 재활용했다.

무엇보다 이번 발굴에선 국내 단일 유적 최대 규모의 목간이 확인돼 주목받고 있다. 비교적 글씨가 뚜렷한 목간이 82점, 일종의 부산물인 삭설(목간에 적힌 글씨를 삭제 또는 수정하기 위해 표면을 깎아내며 생긴 부스러기)이 247점에 이른다. 이들은 사비 천도 초기 단계에 조성된 20m 길이의 수로 안에서 무더기로 쏟아졌다. 연구소 측은 “목간 글씨 중 경신년(庚申年)은 540년, 계해년(癸亥年)은 543년에 해당하는데, 이를 통해서도 해당 유적이 사비 천도 초기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연구소는 수로 인근에 목간을 제작·관리·폐기하던 관청이 자리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사비 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에서 지난 2년간 총 329점의 목간과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橫笛, 가로 피리) 1점이 출토됐다고 5일 밝혔다. 사진은 부여 관북리 유적 발굴지 전경(악기출토_수혈 19호, 목간출토 배수로1호와 수혈19호). 사진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사비 백제 왕궁터' 발굴 조사 성과 공개   (서울=연합뉴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부여 관북리 유적을 조사한 결과 길이가 28.3㎝에 달하는 목간에 '공적이 4개인 도족이를 소장군으로 삼다'는 문구가 적혀 있어 인사와 관련한 문서로 추정된다고 5일 밝혔다. 사진은 관등과 관직이 표기된 목간. 2026.2.5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문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백제기 연구에 이들 목간은 귀중한 실마리가 돼줄 전망이다. 이곳에선 국내에서 최초로 편철(編綴, 줄줄이 엮어 만듦) 목간도 나왔는데 “功四爲小將軍刀足二(공사위소장군도족이)”라는 문구가 있다. ‘공적이 4개인 도족이를 소장군으로 삼다’는 뜻이라 인사 관련 문서로 보인다. 이밖에도 국가재정과 관련된 장부 목간, 관등·관직이 적힌 목간과 삭설이 다수 나와 당시 국가 운영 체계를 엿보게 한다.

부소산 남쪽의 넓고 평탄한 대지에 위치한 관북리 유적은 백제 사비기의 왕궁터로 여겨져 1980년대 이후 발굴 조사가 이뤄져 왔다. 무령왕의 아들 성왕(재위 523~554년)은 538년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고 웅진(공주)에서 이곳으로 천도했다. 앞서 대형 전각건물과 수로, 도로시설 등이 확인됐고 멸망기 흔적까지 확인된 데 이어 이번 조사에선 천도 초창기의 도시와 왕궁 형성 과정에 한걸음 접근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지난해 10월 발의된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에 관한 특별법안(박수현 의원 대표발의)에 힘입어 앞으로 백제 사비기의 역사를 명확히 규명하는 데 적극 임하겠다”고 말했다.

백제금동대향로 속 피리…9세기 일본이 이어받은 백제 음악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사비 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에서 지난 2년간 총 329점의 목간과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橫笛, 가로 피리) 1점이 출토됐다고 5일 밝혔다. 사진은 악기 유물의 재현품(오른쪽) 제작 이해를 돕기 위한 소품들. 사진 국가유산청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속 피리와는 다른 형태다.”

이날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공개한 횡적(橫笛) 유물은 취공에 직접 입술을 대고 가로로 부는 소금 형태다. 숨을 불어넣는 부위에 겹서(일종의 리드)를 끼워 세로로 연주하는 피리(종적, 縱笛)와는 원칙적으로 다른 악기다. 연구소 측은 이해를 돕기 위해 ‘가로로 부는 피리’라는 표현을 썼다.

국내에선 처음 출토됐지만 일본에서는 대나무 관악기가 몇 번 나왔다. 미야기현 이치카와바시 유적에선 길이 34.8㎝의 완전한 형태의 횡적(지공 6개)이, 시미즈 유적에셔는 길이 30㎝의 횡적(지공 6개로 추정) 일부가 나왔다. 둘 다 9세기로 추정된다. 후쿠시마현 에다이라 유적에선 중간 부분이 떨어져 나간 8세기 횡적이 출토됐는데 복원 연구를 통해 길이 약 34㎝(지공 5개) 또는 36㎝(6개)로 추정됐다.

이번에 나온 관북리 횡적은 이러한 일본의 실물 사례에 앞서 7세기로 편년된다는 점에서 백제 악사들이 일본에 음악을 전래한 문헌 기록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일본후기(日本後紀)』의 809년 기록에는 ‘횡적, 공후, 막목, 무용 등 4명의 백제악사를 정했다(百濟樂師四人 橫笛空模莫目舞等師也)’고 나와 있고 법령을 엮어 모은 『유취삼대격(類緊三代格)』의 848년 기록에는 ‘백제악생을 스무 명에서 열세 명을 줄여 일곱 명으로 정하였는데 횡적생 한 명은 줄이지 않았다(百濟樂生甘人 減十三人, 定七人 橫笛生―人不滅, 莫牟生―人不滅, 輩篠生―人元二人)’고 돼 있다. 이를 통해 9세기까지 일본 궁중에서 백제 음악이 연주됐고 횡적이 중요한 악기였음을 알 수 있다.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다섯 악기를 연주하는 오악사가 묘사돼 있다. 사진 국가유산청
현존 유물 중에 백제 악기가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된 백제금동대향로(부여 능산리 출토) 엔 다섯 가지 악기를 든 오악사가 묘사돼 있지만 이 중엔 횡적이 없고 피리만 있다. 다만 백제 유민이 673년에 제작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에 횡적을 연주하는 악사가 등장해 백제에선 가로·세로 관악기가 두루 쓰인 것으로 보인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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