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A씨는 마약 대금을 비트코인으로 세탁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불법 가상자산 거래소 홈페이지를 열었다. 이후 마약 구매자를 텔레그램에서 접촉한 뒤 무통장입금 방식으로 현금을 이체받고, 이를 비트코인으로 바꿔 마약 판매자에게 전달했다. 2023년 5월부터 이듬해 말까지 이런 방식으로 100여 건의 마약 대금을 중개하고 최대 20%씩 수수료로 챙겼다. 그는 지난해 11월 마약류관리법 등 위반 혐의로 구속 송치됐다.
금융당국이 이런 마약이나 도박 등 중대민생침해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에 대해선 법원 결정 전이라도 동결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금·암호화폐 등을 이용한 자금 세탁 범죄가 갈수록 고도화하는 것에 맞춰 범죄 피해를 미리 차단하고 자금 몰수 효과도 높이려는 목적이다.
5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이를 골자로 한 ‘자금 세탁 방지 관련 주요 업무 수행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초국가범죄와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을 이용한 자금 세탁 사례가 증가하면서 기존 제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단 판단에서다.
FIU에 따르면, 고액 현금 거래(1000만원 이상) 건수는 연간 2000만 건에 달한다. 이중 상당수가 자금 흐름 추적의 사각지대에 있다. 여기에 디지털 금융이 확대되며 가상자산 관련 의심거래 보고(STR) 건수가 2024년 108만4142건에서 지난해 133만3391건으로 급증했다. FIU 관계자는 “모니터링이 어려운 거래 수단이 확대되면서 기존 방식으로는 범죄 자금 차단에 한계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는 범죄 의심계좌에 대해선 FIU가 즉각 정지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 현재는 보이스피싱이나 주가 조작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법원의 몰수·추징 보전 결정 없이는 계좌 동결이 불가능하다.
제도 개선은 먼저 수사기관이 요청할 때 FIU가 해당 계좌를 정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법 개정 절차가 마무리되면 FIU의 자체 분석 결과 자금 세탁 등 범죄와 엮인 게 의심되는 계좌도 정지가 가능하게 된다. FIU 관계자는 “재산권 침해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 마약·도박·테러 자금조달 등 특정 중대범죄만을 대상으로 하고 계좌 주인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도 함께 마련할 것”이라며 “올해 상반기 중 이런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캄보디아 한국인 납치·감금 범죄의 배후로 지목됐던 프린스그룹 같은 국제 범죄조직도 ‘금융거래 등 제한 대상자’로 지정할 수 있게 테러자금금지법령 개정을 추진한다. 현행법상 테러나 핵 확산 관련자에게만 한정된 제재 대상을 초국가적 범죄조직까지 확대하는 방향이다. 제한 대상자로 지정되면 금융거래나 재산권 처분 시 금융위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며, 허가 없는 거래는 엄격히 금지된다.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대비해 감시망도 마련한다. FIU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에게 고객확인(KYC)과 의심거래보고 등 기존 금융회사 수준의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또 발행사에 동결·소각 기능이 내재한 코인을 발행하도록 하고,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정보 제공 의무(트래블룰)를 100만원 미만 소액 거래로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FIU 관계자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는 스테이블코인이 결제나 자금이전 수단으로서 대중화 가능성이 커 다른 가상자산보다 위험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며 “국내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대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