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문과 조건문의 시작 단어 ‘만약(萬若)’은 우리말 부사어 같지만 원래 한자어다. 그 뜻은 ‘만(萬) 가지 경우 중 혹시 그와 같은(若) 일이 생긴다면’쯤이다. 핵심은 ‘약’이고 ‘만’은 강조어다. 비슷하게 쓰는 ‘만일(萬一)’은 ‘만 가지 경우 중 하나’라는 뜻이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강조할 때 쓴다.
가정문과 조건문은 인류사를 관통하며 사회 질서를 규율하고 발전을 추동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 성문법전인 ‘우르남무 법전’(BC 2100년 전후)과 그 뒤를 이은 ‘함무라비 법전’(BC 1750년)의 법 조항은 ‘만약 무슨 죄를 지으면, 어떻게 처벌(배상)한다’라는 가정문과 조건문 형식이다. 수천 년 전 수메르어와 아카드어로 점토판과 돌에 각각 새겼던 ‘만약…한다면’의 가정문과 조건문은 현대에 이르러 디지털 정보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된다. 19세기 영국 수학자 조지 불이 정립한 ‘불 대수(Boolean algebra)’와 이진법 논리체계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의 가정문과 조건문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는 가정문과 조건문의 거대한 숲이다.
인류사적 의미를 제아무리 부여해도, ‘만약’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면 그와 함께 반추할 수밖에 없는 회한의 감정을 넘어서기 힘들다. 지난해 마지막 날 개봉한 한국 영화 ‘만약에 우리’가 한 달여 만에 관객 250만 명 돌파를 앞뒀다. 10여년 만에 재회한 영화 속 남녀 주인공 대화는 결국 가정문과 조건문의 나열이다. “만약에 그때 우리가 끝까지 버텼다면?”(은호) “결국 서로를 미워하며 끝났을 거야.”(정원) “만약에…, 만약에….”
요즘 온갖 뉴스 매체를 정치권의 만남과 헤어짐 관련 소식이 도배하다시피 한다. 이합집산이 부산한 건 선거가 머지않다는 증거다. 넉 달 채 남지 않은 6월 4일 아침 해가 떠오를 즈음 한쪽은 회한에 몸부림칠 테다. “만약에…, 만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