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평냉같은 이 와인, 굴과 환상의 콤비

중앙일보

2026.02.05 07:06 2026.02.05 07:1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위키드 와이프의 일상와인 - 샤블리
위키드 와이프가 준비한 굴화이트 상차림. 겨울을 대표하는 해산물 굴은 산도 높은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린다. [사진 이영지]
지난 주말에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석화를 시켜 굴 한 접시를 먹었다. 2월이 굴의 마지막 시즌이라고 생각하니,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많이 먹어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2월의 와인 이야기도 그래서 굴을 주제로 삼았다.

지난해 초봄,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협회 앰버서더 자격으로 부르고뉴의 작은 마을 샤블리(Chablis)를 다녀왔다. 4월 초였는데도 동네 시장에서 굴을 팔았다. 주민들이 와인잔과 굴 껍질을 들고 좌판 앞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도 슬쩍 자리를 잡았다.

굴이 아주 시원한 건 아니었는데, 온도 때문에 짠맛과 감칠맛이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콸콸 따라주는 화이트 와인과 함께 결국 큰 굴을 세 개나 먹어 치웠다.

시장에서 따라준 화이트 와인은 물을 필요도 없이 샤블리였다. 샤블리는 사랑스럽게 들리는 이름과는 별개로 와인에 관한 엄청난 역사를 지닌 고장이자, 명품 화이트 와인의 이름이다.

신재민 기자
부르고뉴 북쪽에 위치한 샤블리는 기온이 낮고 서늘한 마을이다. 하여 이곳의 포도는 아주 천천히 익는다. ‘포도가 천천히 익는다’는 건 중요하다. 포도가 빨리 익어버리면 단맛만 도드라지고 정작 필요한 산미는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샤블리는 큰 일교차 덕분에 포도 안에 날카로운 산미가 꽉 들어차 있다. 이 산도가 굴이 지나간 입안을 말끔히 정돈해준다.

프랑스 부르고뉴 샤블리에서 촬영한 청포도 샤르도네. [사진 이영지]
샤블리의 화이트 와인은 오직 샤르도네(Chardonnay) 한 품종으로만 빚는다. 하지만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 샤르도네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같은 포도여도 성격이 다른 건, 토양의 결이 달라서다.

샤를리의 흙을 파보면 얇은 석회암 조각이 나오는데, 그 조각 안에 놀랍게도 쥐라기 시대의 조개와 굴 화석이 박혀 있다. 그래, 맞다. 샤블리는 1억년 전 바다였다. 샤블리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을 때 입안에서 미세하게 감도는 ‘금속성’의 감각은 오래전 바다였던 시절이 소환된 결과다.

여기서 ‘금속성’ 즉 ‘미네랄(Minerality)’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미네랄은 흔히 와인의 ‘짠맛과 광물성 질감’을 말한다. 무슨 뜻인지 어려우면, 바닷가의 큰 바위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바위 표면을 혀로 핥는다고 상상해보자. 짭짤한 소금기와 돌에 묻은 매끈거리는 질감이 느껴지시는가. 이게 ‘미네랄’이다. 와인에서 이런 느낌을 받으면 “미네랄의 풍미가 난다”고 표현한다.

부르고뉴의 드루앵(Drouhin) 와이너리는 수백 년 된 오크통을 그대로 사용한다. [사진 이영지]
샤블리에는 화려한 향이 거의 없다. 대신 레몬 껍질, 흰 꽃, 바닷가의 돌 같은 아주 정갈하고 간결한 향이 주를 이룬다. 언젠가 내 와인 강의 수강생이 샤블리를 시음하고 “평양냉면 같다”고 말했을 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었다.

바다의 염분과 철분을 머금은 굴을 씹으면 은근한 단맛이 올라오는데, 여기에 신맛이 선명하고 미네랄이 강한 샤블리를 곁들이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첫 모금에 염분이 씻겨 내려가고, 두 번째 모금에서 굴의 단맛이 선명해지며, 마지막에는 기분 좋은 감칠맛만 입안에 남는다.

이 경험은 단순히 ‘잘 어울린다’는 막연한 느낌을 넘어, 굴 고유의 성질을 와인이 정확하게 보듬어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굴과 샤블리가 늘 함께하는 건 관습 때문이 아니다. 과학적인 매칭의 결과다. 2월이 다 가기 전에 여러분도 석화와 샤블리를 준비하는 즐거운 분주함을 만끽하시길 바란다.


이영지 와인 페어링 전문가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