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는 한국 정치에서 좋은 먹잇감이다. 무주택자와 1주택자들이 국민의 다수다. 정치권은 흔히 다주택자들의 투기 때문에 집값이 폭등한다는 프레임을 짠다. 거기서 다주택자는 공공의 적이 된다. 현실 정치는 원래 공공의 적을 공격하는 법. 그동안 수많은 집값 대책에서 다주택자 때리기가 우선순위가 됐던 이유다. 그런데 극소수 악성 투기꾼을 제외하면 통상의 다주택자에겐 이유가 있다. 자녀 상속, 투자, 주택 임대사업 등등. 그중엔 형제가 공동상속을 받아 매도에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동기가 무엇이든 그들은 결과적으로 임대차 시장에 집을 공급하고 전월세 가격을 안정시키는 순기능도 한다.
진보 정권,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매물 잠기고 아파트 가격은 폭등
충분한 공급·규제 완화가 정답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유예를 종료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다주택자는 다시 한번 집값 급등의 주범으로 몰렸고, 그들에 대한 양도세 중과는 당연한 것이 됐다. 아쉬운 것은 양도세 중과에 대한 본질적 고민, 즉 무거운 세금이 징벌적 기능 말고 집값 안정에 효과가 있는 정책인지에 대한 고민은 묻히게 됐다는 점이다. 이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현 정권의 ‘묻지 마’ 정책이 됐다. 양도세 중과는 노무현 정부 시기이던 2004년 도입됐다. 그 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유예·폐지, 문재인 정부에서 재도입, 윤석열 정부 때 유예를 거쳐 이제 부활(유예 종료)을 앞두고 있다. 진보 정권에선 시행, 보수 정권에선 유예·폐지를 반복했다.
그동안 부동산 시장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노무현 정부에서 55.7% 폭등한 뒤 이명박 정부 기간 -4.5%의 하향 안정세를 보였고, 박근혜 정부에서 10.2% 올랐다. 문재인 정부에선 61.9% 상승률로 다시 폭등했고, 윤석열 정부 기간 -6.4%를 기록한 뒤 현 정부(2025년 6월~2026년 1월)에서 8.1% 상승을 기록 중이다. 공교롭게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시행된 진보 정권에선 아파트값이 폭등했고, 유예·폐지된 보수 정권에선 아파트값이 내리거나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 아파트값 결정 요인은 복합적이다. 경기와 금리, 대출, 부동산 세금 등이 맞물리며 작용한다. 양도세 중과가 집값 상승의 유일 요인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양도세가 무거워지자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지 않으면서 매물 잠김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SNS에서 “집을 몇 채씩, 수십·수백 채씩 사모으는 바람에 집값과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올라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이 줄어 나라가 사라질 지경”이라고 했다. 이 인과관계는 완벽하지 않다. 집값 급등이 청년들에게 큰 고통인 것은 맞지만, 그간의 집값 급등을 다주택자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시장에선 현 정권에서 집값이 뛴 명백한 요인으로 다른 것들을 거론한다. 우선 공급 부족. 가령 서울만 해도 올해 입주 물량은 2만9161가구로 작년(4만 2611가구)보다 31.6% 감소한다(부동산 R114). 다음은 불안 심리. ‘똘똘한 한 채’ 선호 추세가 서울과 수도권 주택 매수 욕구를 자극했다. ‘똘똘한 한 채’는 국민들이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정책에 적응한 결과다. 게다가 공급 부족으로 집값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심리도 강하게 형성돼 있다. 그리고 시장 구조의 왜곡. 토지거래허가제 확대 등 거래를 옥죄는 지난해 10·15 대책 이후 우려했던 대로 전세 물건이 급감했다. 이로 인한 전세난이 무주택자를 영끌 매수로 밀고 가고 있다.
역대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공통된 교훈을 남겼다. 세금 중과로 집값을 안정시키진 못한다, 충분한 주택 공급 없이 부동산 시장의 불길을 잡을 수는 없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지 않고선 도심 주택 공급을 넉넉히 늘리긴 어렵다 등이다. 그런데도 실패한 길로 다시 들어서는 것은 왜일까. 과연 망국적 부동산 문제의 주범은 누구인가. 정부는 정말 집값을 잡고 싶기나 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