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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참을 수 없는 ‘공직’의 가벼움

중앙일보

2026.02.05 07:18 2026.02.05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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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서울대 명예교수·전총장
우리나라가 빨리 선진국으로 발전하게 된 중요 이유 중 하나로 유능한 공무원 시스템을 드는 경우가 많다. 물론 비전 있는 리더들의 방향 제시도 중요했지만,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을 맡아서 완수하는 것은 실무자들이기 때문에 공무원의 기여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중화학 공업과 방위산업의 밑그림을 그린 오원철 경제2수석이나 아웅산 테러 때 순직한 김재익 경제수석, 정보통신산업의 기초를 닦은 오명 과학기술부총리 등 우리 기억에 남아 있는 분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이처럼 출중한 공직자들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공직사회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국가 발전에 공직자의 역할 중요
공직자는 도덕성과 전문성 가져야
정치적 이유로 부적격자 임용되면
공직사회 망치고 국가 미래 훼손

공직자(公職者)란 국가나 공공단체의 일을 맡아보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로서,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의 위임을 받아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권한을 가진다. 물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권한을 개인을 위해 사사롭게 쓰면 안 되는 것이 철칙이다. 그러기에 조선시대에 민초를 다스리는 관리들의 마음가짐과 행동 강령을 기술한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도 청렴(淸廉, 淸心)이 공직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최근의 보도를 보면 국회의원들이 지방의회나 지방자치 단체장의 공천을 미끼로 사리사욕을 채우고, 그렇게 권력을 얻은 지방 권력자들은 그 권력을 자신들의 사욕을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인으로서의 기본도 안 된 사람들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남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부정의 규모가 커지면 아프리카나 남미의 일부 국가처럼 국민들은 비참하게 사는데 독재자와 그 세력들은 억만장자가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공직자로서의 또 하나의 중요한 자질은 전문성(專門性)이다. 목민심서에도 이전(吏典), 호전(戶典), 병전(兵典), 형전(刑典) 등 고을 수령이 담당해야 할 일들에 대한 지침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고위 공직자 인선을 보면 그 전문성에 의심이 가는 경우가 눈에 띈다. 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대사가 된다거나 금융 분야의 전문성이 의심되는 사람이 금융 감독의 책임을 맡는다거나 하는 일이다.

물론 그러한 일은 과거 정부에서도 있었고,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변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직책에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을 앉히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나름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신 능력 밖의 일을 덥석 받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전문가로서의 진정한 자존심이 있다면 자신의 능력보다 권력자와의 인연 때문에 고위직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매우 수치스럽게 여길 텐데, 지식인으로서의 양심보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앞서는 모양이다.

이처럼 도덕성과 전문성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공직을 차지하게 되면 공직의 엄중함이 무너져 가볍게 여겨지게 된다. 게다가 이런 낙하산 인사는 진정한 전문가들의 사기를 꺾는 부작용도 야기(惹起)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모든 분야가 상당히 발전하여서 국가에서 중요한 기관을 설립하는 정도이면 그 분야 전문 인력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외교부에는 외무고시나 외교관 선발 시험을 보고 오랜 기간 경력을 쌓은 유능한 외교관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주요 국가나 국제기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대사가 되는 일이 일생의 목표일 수 있는데, 갑자기 자격 없는 낙하산이 날아와 그 자리를 차지하면 얼마나 허탈할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과거에는 능력 있는 공무원들은 정권과 관계없이 충분히 인정받고 보상을 받아왔지만, 최근에는 어느 정권에서 승진했느냐에 따라 고위 공무원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일이 잦아서 문제이다.(중앙일보 2월 2일자 ‘시선’) 다른 정권에서 승진하였다고 우수한 인력을 배제하는 것은 인재가 거의 유일한 무기인 나라에서 자신들의 최고 병기(兵器)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국제적인 상황을 보면 정부와 공공기관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산업 경쟁은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조정 역할만 하면 된다는 의견도 많았으나, 이제는 많은 나라에서 정부가 직접 나서서 자국의 산업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간의 창의력을 중요시하던 미국마저 AI 분야와 제조업은 정부가 직접 챙기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AI 시대에 국가 간 경쟁은 온 국력을 기울인 총력전이고, 이런 경쟁에서는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능력 있는 전문가들이 정부의 주요 직책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자격 없는 사람들이 정부 고위직을 차지하면 국가 경쟁력이 훼손되고 우리나라의 미래도 어두워진다.

오세정 서울대 명예교수·전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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