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봉 1억원을 받던 KT ‘이 부장’이었다. 지방 국립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KT 입사 후 27년을 사무직으로 살았다. 2014년, 53세의 젊은 나이로 명예퇴직할 때까지만 해도 금방 새 직장을 구해 당당하게 인생 2막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현실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손에 쥔 퇴직금은 아직 사회에 자리 잡지 못한 두 딸 포함, 4인 가족이 살아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했다. 할 줄 아는 게 공부뿐이라, 남들이 퇴직금으로 여행 다닐 때 난 취업준비생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렇게 국가·민간 자격증을 28개나 땄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기업 부장 타이틀도, 자격증 숫자도 재취업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 청년·여성·외국인과 경쟁했을 때 ‘문과 출신 중년 남성’은 가장 상품성 없는 최약체였습니다. 문과 계열 자격증을 아무리 따도 답이 없더라고요. "
‘재취업 시 문과는 반드시 이과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진리(?)를 깨닫는 데 무려 4년이 걸렸다. 그사이 퇴직금 수천만 원을 썼고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했다.
‘사무직’ 이의웅(65) 역시 이과로 거듭났다. 그제야 영양가 있는 기술 자격증이 손에 쥐어졌다. 이 기술 자격증을 무기로 당당히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 이제 나에겐 정년도, 실적 압박도 없다. 통장에는 매달 300만원씩 따박따박 찍힌다.
앞으로 20년은 현역으로 더 먹고살 수 있다. (계속)
인터뷰 내내 이의웅씨는 “상품성 없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대기업 부장 타이틀을 떼어낸 뒤 기술 하나 없이 시장에 섰을 때 내린, 냉정한 자기 객관화였습니다.
그렇다고 이의웅씨처럼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수십 년간 내려놓은 연필을 다시 잡고 책상 앞에 앉는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야금야금 퇴직금만 갉아먹으며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는 일은 그럴만한 조건과 환경이 주어지지 않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죠.
그 역시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이라며 “자기계발도, 성취욕 채우기도 아닌 오로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단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털어놨습니다. 인터뷰 도중 “딸들에게 더 보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살짝 붉히는 그를 보며 가장의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자식들에겐 부모님이 그저 건강하기만 해도 큰 위안일 텐데 말이죠.
이의웅씨의 이야기는 단순히 ‘노력하면 이뤄진다’ 식의 낙관적인 후기가 아닙니다. 문과 출신이란 한계를 넘어서며 집요하게 한 단계 한 단계 재취업 루트를 밟아낸 끝에, 비로소 사회에서 또다시 설 자리를 얻어낸 생존 기록에 가깝습니다.
문과 출신의 중년 남성이 어떻게 정년 없는 기술직을 갖게 됐는지, 또 굳은 머리를 깨워 공부하는 족족 ‘한 방에’ 붙었다는 자격증 취득 비법은 무엇인지, 이의웅씨가 발견한
가장 확실하고 빠른 노후 보장 지름길을 숨김없이 알려드리겠습니다. 성실함을 무기로 정면돌파했던 그의 은퇴 후 이야기가 새로운 출구를 찾아 나선 당신에게 길라잡이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