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경남 창원특례시 진해구 여좌동 지식산업센터 앞. 문을 연 지 1년 남짓 된 건물 외관은 말끔했지만 주변은 사람의 발길이 뜸했다. 이곳은 옛 진해 육군대학 부지로 통합창원시 출범 직후 새 야구장 건립 예정지로 거론됐던 곳이다. 수만 명의 관중을 수용하는 돔 경기장이 들어설 수 있다는 기대가 한때 이 일대를 채웠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계획이 무산된 뒤의 쓸쓸한 풍경뿐이다.
2011년 3월 창원시와 NC 다이노스는 창원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단 창단과 함께 새 야구장 건립을 약속했다. 통합 직후 추진된 대형 프로젝트였고, 구장 입지는 곧 통합창원시의 첫 시험대가 됐다. 시는 옛 창원·마산·진해의 후보지 세 곳을 놓고 1년 넘게 검토한 끝에 이 부지를 최종 후보지로 발표했다. 그러나 접근성과 그린벨트 해제 문제 등이 논란이 되면서 결국 계획은 백지화됐고 새 구장은 옛 마산종합운동장 자리로 낙점됐다. 이곳엔 최근에야 건물이 들어섰다.
지식산업센터 앞에서 만난 최창호(51)씨는 당시를 또렷하게 기억했다. “지역명과 시청사를 양보하는 대신 진해에는 NC 홈구장을 짓겠다는 약속이 있었다. 야구장이 들어오지 않은 것도 아쉽지만 실현 가능성 없는 약속으로 주민들을 설득한 게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통합 이전 창원시는 전국에서도 손꼽히게 ‘잘 나가는’ 도시였다. 계획도시 특유의 정연한 도시 구조와 전국 기초자치단체 상위권 예산 규모, 젊은 산업 인력 등은 행정 효율성과 도시 경쟁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2010년 지역경쟁력지수에서 전국 163개 시·군 중 7위에 올랐다. 비수도권 도시로서는 이례적인 성적이었다. 같은 시기 마산과 진해의 상황은 달랐다. 마산은 산업 구조 노후화와 원도심 쇠퇴가 겹쳤고, 진해 역시 자족 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 과정에서 ‘자율 통합’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파격적인 재정 인센티브와 각종 지원 약속이 뒤따랐고 통합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이후 중앙정부가 제시한 인센티브 시한이 임박하자 지역 국회의원들은 3개 시의회를 압박했고, 결국 주민투표 없이 시의회 표결만으로 통합 찬성 결정이 내려졌다. 그렇게 2010년 7월 1일 창원·마산·진해는 하나의 도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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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이름만 잃어” “진해만 소외감” “창원만 손해 본다”
중앙SUNDAY가 창원을 찾은 건,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전·충남, 광주·전남을 중심으로 한 초광역 행정통합 방식이 당시와 비슷해서다. 주민투표 없이 지방의회 의결로 추진한다. 당시에 비해 인센티브의 규모는 더 커졌고(2444억원→4년 최대 20조원), 지방선거 전으로 속도 또한 더 빨라졌다. ‘창원’이란 렌즈를 통해 제대로 된 통합의 길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다. 그렇다면 15년 후 ‘창원’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이에 대해 현지에서는 통합창원시의 몸집은 커졌지만 체력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평가가 적잖다. 통합 초기 48%에 달했던 재정자립도는 2020년대 중반 들어 20%대로 급락했다. 반면 채무는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10년대 초반 240억 달러를 웃돌던 수출액도 2020년대 중반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2024년에는 100만 인구 ‘저지선’마저 무너졌다. 통합창원시 인구는 지난달 기준 99만407명으로 통합 후 15년 만에 10만여 명이 줄었다.
신시청사 문제도 15년 넘게 제자리걸음이다. 당분간 사용하자던 기존 창원시청을 통합시청으로 쓰면서 행정의 중심도 함께 이동했다. 마산·진해 지역에서 원도심 역할을 하던 시청은 구청이 됐다. 행정 중심이 옮겨가자 생활 중심도 함께 이동했다. 통합 전 마산시청(현 마산합포구청) 인근에서 30년 가까이 식당을 운영해온 박영길(71)씨는 “시청이 옮겨가면서 사람들 발길도 뚝 끊겼다. 통합 이전과 비교하면 매출이 6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마산회원구 주민 김성진(49)씨가 꼽은 가장 큰 상실 중 하나는 ‘이름’이었다. 그는 “지역 이름이 사라지면서 마산시민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며 “태어난 동네 이름도, 모교 이름도 모두 ‘창원’으로 바뀌면서 뿌리를 잃은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옛 진해 지역 역시 득보다 실이 많았다는 평가가 적잖다. 한때 진해 분리 운동을 주도했던 시민단체 ‘희망진해사람들’ 조광호 대표는 “교육지원청 등 각종 기관이 모두 창원으로 이전했다”며 “창원 중심의 ‘빨대 효과’로 지역민들의 소외감은 더 커졌다”고 토로했다.
창원 주민들은 ‘역차별’을 호소한다. 통합 직후 마산·진해 지역에 각종 지원이 집중됐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마산에서는 마산 해양신도시 개발과 3·15 해양누리공원 조성, 원도심 재생 사업 등이 추진됐고 진해에서도 올해 대규모 아트홀과 도서관이 문을 열 예정이다.
정부가 지난해 창원시에 지급한 자율통합지원금은 총 24억4400만원. 이 중 약 40%(9억7760만원)가 마산권에 편성됐고 진해권과 창원권은 각각 37%와 23%를 차지했다. 인구를 감안하면 격차는 더 뚜렷해진다. 마산권(35만여 명)과 진해권(18만여 명)의 1인당 예산은 2만7800원, 4만9000원이지만 인구가 가장 많은 창원권(45만여 명)은 1만2400원에 그쳤다. 창원시 관계자는 “사회기반시설이 이미 갖춰진 옛 창원 지역에 비해 마산·진해 지역의 시설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어 예산이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창원 지역 주민 윤선민(40)씨는 “대기업과 인구 절반이 몰린 창원에서 세수가 대부분 창출되는데 배분은 마산·진해와 나눠야 하니 손해 보는 기분”이라며 “통합으로 이름은 하나가 됐지만 생활권이 달라 오히려 지역 간 차이만 더 의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15년간 지원해온 자율통합지원금은 지난해를 끝으로 중단됐다. 정부가 ‘자율 통합’의 대가로 약속한 인센티브 총액 2444억원 중 실제 지급된 금액은 1906억원으로 전체의 약 78%에 그쳤다. 박남용 경남도의원은 “통합으로 발생한 행정 비용은 실제 지원금의 3배에 달하는 5763억원으로 추산된다”며 “기반 시설 정비와 행정 통합 비용 부담이 여전히 커 추가 재정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가 자율통합지원금으로 377건의 지역균형발전 사업을 추진했지만 지역 간 불균형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통합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에는 이른바 ‘4:4:2 구조’가 있다. 통합 이후 정부 재정 인센티브를 마산 4, 진해 4, 창원 2의 비율로 배분하기로 한 결정이다. 이 구조는 이후 10년간 유지됐다. 이는 공무원 인사에도 적용됐다. 익명을 요구한 퇴직 공무원은 “사무관 승진 자리 10개가 있으면 마산과 진해가 각각 4자리, 창원은 2자리였다”며 “공무원 사회에서도 ‘누가 통합의 수혜자인가’를 두고 갈등이 컸고, 진급하지 못한 창원 공무원이 대거 퇴직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갈등은 시민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2020년 창원시정연구원이 발표한 통합 10주년 조사에 따르면 ‘양질의 공공서비스 향상’(23.8%)은 장점으로 꼽혔지만 시민의 20.5%, 공무원의 38.4%는 여전히 지역 간 갈등이 심하다고 응답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속도보다 내실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충분한 숙의 과정이나 주민투표 없이 진행된 졸속 통합이란 비판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중앙정부의 실질적인 권한 이양과 재정 지원 없이 단순히 인근 지역을 묶는 방식으로는 통합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