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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삶을 원한다.”
최근 이란 전역에서 확산한 시위의 핵심 구호다.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마슈하드, 이스파한 등 주요 도시에서는 밤마다 야구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섰다. 일부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초상화를 바닥에 내려놓고 불태우는 등 공개적인 저항에 나섰다. 자유를 향한 이들의 분노와 결연함은 불길처럼 번져갔다.
이 장면들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빠르게 전 세계로 퍼졌다. 파급력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 작가인 J.K 롤링 등 유명 인사의 언급이 이어질 정도로 상당했다. 지난달 8일(현지시간)부터 이어진 정부의 전국적인 인터넷 차단도 별수 없었다. 현지 독립매체 이란와이어는 “이란의 Z세대(1997~2012년 출생)는 ‘정상적인 삶(normal life)’이라는 간결하지만, 근본적인 요구를 내걸고 거리로 나섰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 환율 폭락과 물가 급등에 항의한 전통 시장 상인들의 파업에서 시작된 시위가 Z세대를 포함한 젊은 층이 대거 합류하면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반체제 운동으로 급변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일 “젊은 층의 참여가 시위를 반체제 봉기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란 인구의 약 42%가 30세 이하인 가운데, 많은 청년이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인권단체 ‘이란 인권활동가들(HRAI)’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확인된 사망자만 6000명 이상이며, 이 중 상당수가 10대와 20대라고 한다. 실제 희생자는 1만 명을 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란 Z세대의 분노 배경으로 구조적인 경제 위기를 지목한다. 유엔(UN)에 따르면 지난해 이란의 청년 실업률은 20%를 웃돌았고, 미국 주도의 제재 장기화로 생활 여건은 지속해서 악화했다. 홀리 다그레스 워싱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WSJ에 “이란 Z세대는 총과 곤봉의 위험을 알면서도 거리로 나선다”며 “그들은 자신의 미래가 싸울 가치가 있다고 믿고, 세계의 일부로 살아가며 자유와 기회를 누릴 권리를 원한다”고 말했다.
김혁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본지에 “‘정상적인 삶을 원한다’는 구호 뒤에는 인구학적 현실이 있다”며 “이란 인구의 절반 이상은 이슬람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태어나 체제 부패와 경제 붕괴 속에서 성장한 세대”라고 설명했다. 그는 “스마트폰과 SNS로 세계를 접한 이들은 청년 실업과 생계 위기를 더 이상 감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지만, 명확한 리더십 부재로 정권 교체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Z세대가 주도하는 시위는 이란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흐름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네팔에서는 대학생과 20대 청년들이 SNS를 통해 반부패 집회를 조직하며 총리 퇴진 요구를 확산시켰고, 방글라데시에서는 Z세대가 주축이 된 청년·학생 시위대가 공공부문 채용 특혜와 경제난에 항의하며 거리 시위를 주도했다. 중남미에서는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 등지에서 청년들이 생활비 급등과 불평등을 문제 삼아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동유럽에서도 세르비아 등에서 Z세대가 선거 불신과 부패에 반대하는 시위의 조직과 확산을 이끌었다.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에도 Z세대는 ‘시민불복종운동(CDM)’의 핵심 세력으로 참여해 온라인 조직과 거리 시위를 병행하며 저항의 중심에 서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