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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팔만 입어도 땀이 송송…2030직장인 이곳으로 퇴근합니다

중앙일보

2026.02.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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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만큼 후끈 일상 속 겨울 스포츠

스케이팅 인파로 붐비는 서울 롯데월드 아이스링크. 원동욱 기자
“차가운 얼음과 뜨거운 몸, 상반된 감각이 주는 묘한 짜릿함 때문에 사계절 내내 스케이트화를 벗을 수가 없어요.”

지난 3일 오후 7시30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실내 아이스링크. 퇴근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는 직장인 서재현(29)씨가 스케이팅을 멈춘 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서씨는 “여름엔 더위를 피하러 왔고 겨울인 지금은 오히려 추위를 즐기러 종종 들른다”며 “꽉 막힌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답답했던 속이 이곳에만 오면 뻥 뚫리는 기분”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빙판 위에 처음 발을 디딜 땐 코끝이 찡할 정도로 서늘하지만 몇 바퀴 돌다 보면 어느새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게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이라며 다시 은반 위로 미끄러져 갔다.

놀이공원의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는 돔 천장 아래 서씨와 같은 직장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밖은 체감온도가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겨울 칼바람이 불었지만 실내 빙판은 얇은 운동복 차림의 시민들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삼삼오오 모인 이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스케이트 끈을 조여 매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얼음 위에 내려놓을 준비를 마쳤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정오연(33)씨는 “아이가 워낙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오고 있다”며 “추운 겨울에 따뜻한 실내에서 얼음 위를 누빈다는 게 실내 빙상 스포츠의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2030 실용성 추구SNS에 사진 공유 붐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6일(현지시간) 개막하면서 17일간의 열전에 돌입한 가운데 겨울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겨울 스포츠를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의 시선이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과거엔 선수들의 경기를 TV로 접하는 게 주였다면 최근엔 개인이 직접 참여하는 취미·체험 중심으로 변모했다는 점에 눈에 띈다. 즐기는 종목도 스키와 스노보드 등 야외 스포츠 위주에서 피겨스케이팅과 실내 스키, 심지어 아이스하키 등 예전엔 프로 선수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실내 종목에도 직접 도전장을 내미는 동호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이처럼 겨울 스포츠 지형도가 ‘야외·엘리트’ 위주에서 ‘일상 속 생활형 실내 스포츠’로 빠르게 이동하게 된 데는 ‘기후’와 ‘가성비’가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지구 온난화로 겨울이 짧아지고 자연설을 보기 힘들어진 환경 속에서 날씨 영향 없이 실내에서 사계절 즐길 수 있는 겨울 스포츠가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게 됐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고물가 시대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2030세대의 새로운 취미 패턴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다.

박성배 한양대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는 “과거엔 자가용에 무거운 스키 장비를 싣고 이동하는 번거로움에 리프트권·숙박비 등 고비용도 기꺼이 감수해야 했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직관적인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따진다”며 “퇴근 후 지하철을 타고 가서 가볍게 즐기고, 그 모습을 SNS에 바로 올릴 수 있는 도심 복합 스포츠 시설이 이들의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레이스 피겨’ 여성 동호인들이 피겨스케이팅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원동욱 기자
단순한 취미를 넘어 선수 못지않게 몰입하는 ‘헤비 유저’들의 증가도 새로운 트렌드다. 지난 3일 오후 2시 피겨스케이팅 아카데미인 ‘그레이스 피겨’ 강습이 진행 중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 ‘아이스웍스’ 실내 아이스링크는 평일 낮 시간임에도 훈련에 매진하는 수강생들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3년째 피겨스케이팅을 배우고 있다는 직장인 김모(33)씨는 이날도 스핀과 점프 기술 연마에 여념이 없었다. 김씨는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단계별로 기술을 하나씩 마스터해가는 ‘도장 깨기’의 맛에 푹 빠져버렸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싱글 점프를 성공했을 때의 쾌감은 회사 업무 성과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짜릿하다”며 “내게 피겨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제2의 자아’를 실현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최지혜(30) 피겨스케이팅 코치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수강생 대부분이 입시생이었지만 최근 들어 2030세대 직장인 비율이 크게 늘었다”며 “이들은 월급을 아껴 선수용 장비를 구입하고 주말에도 6시간씩 연습할 정도로 진지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 코치는 “직장인 수강생들의 실력이 날로 상향 평준화되면서 과거엔 엘리트 체육으로만 여겨졌던 피겨스케이팅이 일반인들의 생활 체육으로 바뀌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폭발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프라는 숙제다. 최 코치는 “성인 수강생들의 열정은 그 누구 못지않게 뜨겁지만 연습하고 즐길 공간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시내 아이스링크는 선수 대관이나 일반인 입장객으로 꽉 차 있다 보니 동호인들이 취미 생활을 이어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시민들이 스노우플렉스에서 실내 스키를 즐기고 있다. [사진 스노우플렉스 홈페이지]
변화의 바람은 빙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표적인 야외 종목인 스키와 스노보드도 어느새 실내로 들어왔다.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스노우 플렉스’ 등 실내 스키 연습장은 계절과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니아들의 ‘겨울 스포츠 성지’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성재(35)씨는 “강원도 스키장까지 가려면 왕복 4~5시간 운전은 기본이지만 여기선 퇴근 후 30분이면 도착해 곧바로 탈 수 있고, 요즘처럼 한파가 몰아쳐도 실내에서 반팔을 입고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라며 “사계절 내내 스키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보니 겨울 시즌 야외 슬로프에 가서도 한결 편하고 즐겁게 스키를 탈 수 있다”고 만족해했다.

동호인 증가 속도 비해 인프라 부족한 편
전문가들은 ‘도심형·실내형’ 겨울 스포츠로의 이 같은 변화가 단순한 유행에 그치지 않고 기후 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한반도의 겨울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기상청 기후 시나리오에 따르면 2000~2019년 107일이었던 겨울 지속 일수는 2041~2060년엔 84일로 줄어들고 2081~2100년엔 40일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반면 여름은 2000~2019년 97일에서 2081~2100년엔 169일로 급증할 전망이다. 여름과 겨울 기간이 엇비슷했던 한반도의 날씨가 여름은 6개월에 육박하고 겨울은 한 달 남짓으로 축소되는 초고온 열대성 기후로 바뀌는 셈이다.

강이나 호수가 어는 결빙 일수의 감소세는 더 가파르다. 2000년대 연평균 13.8일이었던 결빙 일수는 2030년대엔 7.6일로 줄고 2090년엔 1.0일로 사실상 ‘얼음이 얼지 않는 겨울’이 도래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원학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미 강원도 겨울 축제는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아 축제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며 “지자체들도 눈과 얼음에만 기대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사계절 복합 관광이나 실내형 모델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문했다.

겨울 스포츠를 바라보는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구강본 한국교통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우 고교 야구팀만 4000개가 넘고 직장을 다니며 운동을 병행하는 스포츠 문화도 탄탄하게 정착돼 있다”며 “이젠 우리나라도 시민 개개인이 동호인 모임 등을 통해 일상 속에서도 스포츠를 즐기는 선진국형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원동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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