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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기 대신 생기"…아침 8시, 북촌서 '아아' 들고 춤판 벌이는 이들 [비크닉]

중앙일보

2026.02.06 21:00 2026.02.0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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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토요일 오전 8시, 아직 북촌 골목에 관광객의 발걸음이 본격적으로 몰리기 전 한옥 건물 아래서 낮은 전자음이 번져 나간다. 화장품이 가득한 공간은 순식간에 댄스 플로어로 변하고, DJ가 비트를 올리자 관객들은 헤드셋을 쓴 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자연스럽게 몸을 흔든다. 눈 내린 밖의 설경과 대비되는 열기 속에서 국적과 세대를 초월한 이들이 어우러진 이 장면은, 밤의 클럽이 아닌 서울 북촌의 이른 아침 풍경이다.

북촌 모닝 레이브는 술기운에 기대지 않고도 음악에 몰입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진 PROJECT120130


손에 들린 것은 술이 아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북촌 모닝 레이브(Bukchon Morning Rave)’는 아침 시간대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DJ 파티다. 서울 북촌에 위치한 K-뷰티 편집숍 YLESS가 주최하고, 음악 기반 웰니스 프로젝트 PROJECT120130이 함께 기획·운영한다. 격주 토요일 오전 8시부터 10시 30분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는 술 대신 커피와 음악으로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술을 전제로 한 밤의 유흥 대신, 맑은 정신으로 아침을 즐기는 방식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이러한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웰니스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이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다. 소버 큐리어스는 ‘취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소버(sober)와 ‘호기심’을 의미하는 큐리어스(curious)의 합성어로, 음주를 당연한 전제로 삼기보다 술 없이도 즐거움을 탐색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영국 출신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루비 워링턴이 2018년 출간한 저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를 통해 대중화됐으며,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심야의 취기를 거부하고 또렷한 아침의 에너지를 선택하는 문화로 확산하고 있다.

북촌 모닝 레이브는 이 같은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밤의 흥분 대신 아침의 리듬을 택했고, 취함 대신 각성을 선택했다. 술기운에 기대지 않고도 음악에 몰입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곳은 보여준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최근 ‘북촌 모닝 레이브’를 소개하며 “강한 음주 문화로 악명 높은 한국에서, 젊은 세대가 늦은 밤 술자리를 대신해 커피를 마시며 즐기는 아침 댄스 파티를 새로운 대안으로 탐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6회째를 맞은 북촌 모닝 레이브는 로컬 관객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의 참여 비중도 꾸준히 늘고 있다. 사진 PROJECT120130


술 대신 맑은 각성…고정관념 깨뜨린 아침의 해방감

북촌 모닝 레이브는 2025년 하반기 첫 선을 보인 이후 현재까지 총 6차례 진행됐다. 회차마다 약 200~350명이 참여했으며, 사전 신청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참여 비중도 점차 늘고 있다.

참가자들은 ‘술 없는 춤’이 주는 해방감을 입을 모아 말했다. 직장인 김정연(35)씨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이렇게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놀라웠다”며 “주말 아침을 에너지 있게 보낸 느낌이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소윤(23)씨 역시 “춤은 늘 밤과 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졌다”며 “외국인 참가자들도 많아 여행 온 듯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북촌 모닝 레이브는 색다른 경험이다. 미국에서 왔다는 마크(33)는 “한옥이라는 전통적인 공간에서 현대적인 사운드를 즐긴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며 “술 없이도 이렇게 높은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한국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북촌 모닝 레이브가 단순한 ‘아침 댄스 파티’에 머물지 않는다. 주최 측인 K-뷰티 큐레이션 플랫폼인 YLESS는 공간 곳곳에 뷰티 체험 요소를 녹여냈다. 사진 PROJECT120130


뷰티와 로컬 문화, 체험의 경계를 허물다

북촌 모닝 레이브가 단순한 ‘아침 댄스 파티’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주최 측인 YLESS의 정체성에 있다. K-뷰티 큐레이션 플랫폼인 YLESS는 공간 곳곳에 뷰티 체험 요소를 녹여냈다. 관객들은 음악을 즐기다 언제든 전문가에게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거나 포인트 메이크업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로컬 경험을 결합한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이날은 전통 떡매치기 퍼포먼스가 펼쳐졌고, 캐비어를 잔뜩 넣은 ‘캐비어 주먹밥’과 최근 유행하는 두쫀쿠를 응용한 ‘두쫀떡’이 참석자들에게 제공됐다. 지난 회차에서는 김장 체험이 진행되기도 했다. 단순한 음악 감상에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하는 K-문화·라이프스타일 콘텐트로 확장한 사례다.

PROJECT120130 측은 “북촌이라는 로컬의 결, YLESS가 제공하는 뷰티의 시각적 즐거움, 그리고 우리가 설계한 청각적 비트가 하나로 어우러진 경험을 만들고자 했다”며 “북촌 모닝 레이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해방감과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참석자들에게 캐비어를 잔뜩 넣은 ‘캐비어 주먹밥’과 최근 유행하는 두쫀쿠를 응용한 ‘두쫀떡’이 제공됐다. 사진 PROJECT120130, 이지영 기자

북촌 모닝 레이브는 학자들의 연구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날 현장을 참관한 한국관광학회장이자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서원석 교수는 “오전에 술 없이도 이렇게 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북촌이라는 상징적 공간도 의미가 있지만, 앞으로 광안리 바닷가나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장소에서 이런 행사가 열린다면 공간 자체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서 교수는 또 현장에 참석한 인플루언서들이 실시간으로 이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 같은 민간 주도의 문화 콘텐츠가 지자체와 협력할 경우 관광 활성화 측면에서도 충분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촌 모닝 레이브는 단발성 이벤트를 넘어, 서울의 아침을 새롭게 정의하는 문화 실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오는 2월 7일과 21일을 시작으로 2주 간격의 토요일마다 북촌의 아침을 깨울 예정이다. 이날 만난 행사 기획사 관계자는 “도시인들에게 가장 건강한 방식의 활력을 제안하고 싶다”며 “하루를 시작하는 문화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지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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