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병원과 함께하는 희귀 난치질환 희망 동행 최교민 신경과 교수 희귀병 ‘유전성 강직성 하반신마비’ 보행능력 상실까지 평균 30년 넘어 배뇨·낙상 대비해 삶의 질 지켜야
“걷는다는 건 독립적인 삶과 직결되므로 보폭이 이전과 달라지고 걸음이 뻣뻣해졌다 싶으면 미루지 말고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끝까지 좁혀가다 보면 매우 드물지만, 유전성 강직성 하반신마비(HSP) 같은 희귀병이 밝혀지기도 합니다.”
희귀질환을 다루는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만나 온 건국대학교병원 신경과 최교민 교수의 당부다. 그는 다리가 굳어가도 이를 ‘나이 탓, 허리 탓’으로만 버티다 치료 기회를 놓친 환자를 적지 않게 봐왔다고 한다. 진단이 잘못돼 불필요한 시술, 수술을 반복하며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는 환자도 드물지 않다.
걷는 동작은 고도의 기능이다. 뇌에서 내려온 신호가 신경 경로를 거쳐 다리에 전달되면 양 다리의 근육과 균형 감각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야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다. 힘 빠진 걸음, 흔들리는 걸음, 뻣뻣한 걸음의 원인이 각기 다르다. 최 교수는 “HSP 같은 희귀 신경질환도 항상 염두에 둬야 하며 이에 앞서 치료되는 원인이 숨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다음은 최 교수와의 일문일답.
Q : 신경계 문제면 걸음걸이가 어떤가.
A : “다리에 힘이 크게 빠지지 않았는데 다리가 굳는 느낌이 있고 보폭이 좁아지며 자주 넘어진다. 환자가 느끼는 불편, 가족이 지켜본 변화, 의사가 직접 관찰한 보행 양상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증상이 수개월, 수년에 걸쳐 진행하면 한 번쯤은 신경과적 평가가 필요하단 신호다. 소변을 조절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잘 나오지 않을 때도 의심이 필요하다.”
Q : 희귀질환 진단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A : “보행 장애가 있으면 신경과에서는 파킨슨병 같은 운동 질환을 우선 살핀다. 하지만 운동 조절 문제가 아니고 다리 경직이 보행 장애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면 뇌에서 다리로 내려가는 신호 전반에 문제가 있는지 찾는다. 예를 들어 고령에서 흔한 척수(특히 목) 압박, 알코올 중독, 영양소 결핍이나 흡수 장애로 인한 신경 손상, 척수 혈관 이상이나 염증, 면역력 저하로 인한 감염도 보행 장애와 배뇨 장애를 일으킨다. 이런 원인들에 의한 일부 증상은 치료가 된다. 비교적 더 흔한 원인을 하나씩 배제한 뒤 HSP 같은 아주 드문 희귀 신경질환을 고려하는 게 일반적이다.”
Q : HSP 진단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A : “다리가 점차 뻣뻣해지며 걷지 못하게 되는 희귀병인데 진행 속도가 느리고 초기에는 다른 질환과 구분이 어렵다. 여러 유전자 변이가 비슷한 증상을 만들기 때문에 보행 양상과 신경학적 징후, 장기 경과를 함께 봐야 한다. 유전자 검사는 충분한 임상 평가 후 필요한 경우에 신중히 실시를 결정한다. HSP라 해도 원인 유전자 변이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대로 유전자 변이가 확인됐다고 곧바로 환자라는 의미도 아니다. 유전자 변이가 있어도 발병하지 않은 상태가 길 수 있기 때문이다.”
Q : 치료제가 있나.
A : “HSP 같은 희귀 신경질환의 치료 목표는 가능한 한 오래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다. 독립 보행 능력 상실까지 30년이 넘는다는 보고가 있다. 30대에 증상이 나타나 70대에 침대에서 누워 지내는 와상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완치의 치료제는 없지만, 병의 경과를 이해하고 준비하면 이 긴 기간 동안 삶의 질과 존엄을 지킬 수 있다. 소변이 잘 안 나오면 요로 감염을 막는 계획이 필요하고 생활 조절을 논의한다. 진행에 따라 낙상을 예방하는 보조기 사용과 재활 치료를 준비한다. 성격과 인지 기능 변화가 예상되면 외부 도움, 장기요양보험, 요양병원 같은 사회적 자원 연계까지 고민하는 것이 치료의 일부다.”
최 교수는 희귀병에 대한 낙인으로 더 큰 상처를 남기는 사회 분위기를 우려했다. 유전 질환은 ‘흠’이 아니라 사고처럼 생기는 일이다. 그는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쉽게 말하기엔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은 훨씬 절절하다. 낙인은 진단과 치료를 주저하게 하고 가족 전체의 고통을 가중시킨다”고 말했다.
60대 후반에 HSP 진단을 받은 환자 A씨의 사례다. 그는 오랫동안 증상을 술이나 생활 습관 탓으로 넘기다 심각한 보행 장애와 배뇨 장애, 인지 저하까지 왔다. HSP 진단 이후 질환이 대물림할 가능성이 큰 유전자 변이가 확인됐다. HSP는 생명윤리안전법에 따라 배아 또는 태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가 가능한 질환이다. 이에 막 결혼한 A씨의 자녀는 충분한 준비 후 임신을 계획하기로 했다.
최 교수는 “준비 없는 임신·출산이 있었다면 가족 전체의 고통은 아마 대를 이어 더 커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질환을 가족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일은 질병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희귀 난치질환 희망 동행=이름조차 낯설어 진단·치료가 늦어지기 쉬운 희귀 난치질환. 건국대병원 전문 의료진이 각 질환의 특징과 최신 치료 방향을 알기 쉽게 전합니다. 막막한 투병의 길 위에서 이정표가 되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