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현역 의사’ 이시형 박사(이하 경칭 생략)의 말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 질환인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 의학 용어로 정립했다. 평생을 정신 건강 연구에 바친 권위자이자, 대중 강연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
‘국민 건강 멘토’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유언장을 다시 쓴다는 연유는 뭘까.
" 장기 기증을 약속했지만, 생각보다 오래 살게 돼 쓸 만한 게 없어졌어요. 모아둔 돈도 푹푹 줄고 있고요. "
평생 함께해온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생활비 지출부터 3배로 늘었다. 외식이 잦아지고, 자신을 챙겨주는 가족과 도우미에게 지불해야 할 돈도 많아졌다. “홀아비 생활이 보통 힘든 게 아니다”라며 “100세 시대엔 죽을 준비를 정말 잘해야 할 것 같다”는 그의 말은 구순에 닥쳐온 현실이었다.
단순히 잔고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안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예상보다 더 길어진 수명을 감당해야 할 경제적 준비의 문제, 그리고 배우자 없이 남겨진 시간 동안 홀로 견뎌야 할 정서적 고통에 대한 고백이다.
지금껏 어디서도 듣지 못한 ‘인간 이시형’의 진짜 고민이었다.
이시형은 최근 ‘고독’을 주제로 책을 집필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고독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마누라가 먼저 떠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살아 있을 때 더 잘할 걸 그랬다”는 그의 말은 초고령화 시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안을 담고 있었다.
〈100세의 행복2〉 11화에선 고독과 죽음에 관한 정신과 의사의 진솔한 통찰을 공개한다.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활발하게 집필과 강연을 이어가는 이시형의 건강 관리 비결도 파헤쳤다.
75세부터 늙는다…‘장수의 늪’ 어떻게 건널까
이시형이 고독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장수의 늪’ 때문이다. 오래 살다 보면 나의 노화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장수가 불러온, 일종의 이중고였다. 이시형은 “75세부터 본격적으로 늙는다”고 말했다.
장수의 늪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건널 방법이 있을까. 이시형은 늙어서 ‘죽는 게 낫겠다’는 소리를 안 하려면 노화에 미리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내 삶과 노화를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건강할 때의 특권”이라면서다.
특히 혈압·당뇨·디스크. 이 질병들은 40대부터 반드시 관리하라고 강조했다. 노후를 고통으로 밀어 넣는 이 질병은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얻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수십 년간 실천해온 건강 비법의 핵심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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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하우스 보이’, 미국 유학 떠나다
1934년생으로, 6·25 때 경북중 4학년(현재의 고1)이던 이시형. 그의 삶은 ‘역전의 역사’였다. 가난해서 학교도 못 갈 정도로 열악한 시절이었지만,
“전쟁과 가난이 오히려 기회를 줬다”고 회상했다.
" 대구(경북대학교)에서 미국 예일대학으로 유학을 간다니까 학장이 추천서를 안 써줬어요. 당시 대구에서는 ‘미국’만으로도 달나라 이야긴데, 게다가 명문대에 간다니 겁이 났던 거죠. "
결국 이시형은 추천서를 직접 써서 학장의 서명을 받아냈다. ‘선생님에게만 달나라가 가까워 보인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전쟁 때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house boy)’로 일했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전쟁을 겪으면서 이시형은 미군 부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세탁물을 찾아오고 물도 갖다 주는 심부름꾼이었다. 미군을 상대하면서 그의 마음엔 자신감이 싹텄다. ‘형편없는 내 영어로도 의사소통은 하겠구나.’
그는 미국 예일대 대학원에서 신경정신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경북대 의대 교수,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 등을 지냈다.
또 다른 역전 스토리는 중년의 나이인 50대에 썼다. 의대 교수 시절 테니스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무리한 탓에 허리 디스크에 걸렸다. 운전이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었다.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그는 생활습관을 바꾸면서 재활 치료를 하기로 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이시형은 글쓰기에 몰입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나’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의 방향은 무엇인가’ 등을 진지하고 집요하게 돌아봤다. 책 『배짱으로 삽시다』(1982)가 출판된 배경이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은 200만 부 팔려 나가면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마음 건강’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시형이 지금껏 120여 권의 책을 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그를 주저앉힐 뻔한 고통이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이시형은 2009년 ‘세로토닌 문화원’을 세웠다. 세로토닌이란 뇌 활동에 깊이 관여하는 ‘행복 호르몬’이다. 우리 몸을 평온하게 만들어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다. ‘세로토닌 전도사’ 이시형에게 스트레스 관리법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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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죽음 통찰한 정신과 의사 한 마디
92세의 현역 정신과 의사. 그는 과연 ‘죽음’ 앞에 초연할까. 이시형을 만나면 꼭 대화하고 싶은 주제였습니다. 나의 노화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장수인들이 겪는 이중고를 그는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 처음에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날 때는 내 삶도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나중이 될수록 슬픔이 그렇게 깊지 않은 거예요. ‘나는 나쁜 놈이다, 인간도 아니다’라며 스스로 비난했지요. "
정신과 전문의인 이시형도 죽음에 관한 깨달음을 얻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런 이시형에게 ‘세상을 떠난 아내와 친구를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말은 예상보다 단순했습니다.
" 잘 지냈냐? "
이 소박한 안부 인사가 취재진에겐 오히려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잘 지냈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일상은 모두가 소망하는 바일 테니까요.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를 묻지 못하고 지낸 여러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시형과 한참 나눈 이야기는 결국 이 질문으로 통했습니다. 장수인이자 90대 현역 의사인 이시형의 솔직한 인생 수업을 〈100세의 행복〉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