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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목수의 '이중생활'…동계올림픽 첫 '금메달' 깎았다

중앙일보

2026.02.07 16:59 2026.02.0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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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인 스키 활강 종목에서 대회 1호 금메달을 목에 건 뒤 활짝 웃는 폰알멘. AFP=연합뉴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의 첫 번째 금메달은 인간 승리의 주인공에게 돌아갔다. 주어진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삶의 길을 개척한 인생 스토리가 알려지며 귀감을 샀다.

스위스의 알파인 스키 선수 프란요 폰알멘(25)은 7일 밤(현지시간) 이탈리아 보르미오의 스텔비오 스키 센터에서 열린 대회 알파인 스키 남자 활강에서 1분51초61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력 우승후보로 지목 받은 대표팀 동료 마르코 오데마트(1분52초31)를 제쳤고, 홈 팬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은 조반니 프란초니(1분51초81), 도미니크 파리스(1분52초11·이상 이탈리아)의 추격도 뿌리쳤다.

이번 대회에 걸린 116개의 금메달 중 ‘전체 1호’의 영예를 안은 그는 지난 2022년 베이징 대회에서 이 종목을 석권한 베아트 포이츠(은퇴)에 이어 두 대회 연속이자 통산 5번째 금메달을 조국 스위스에 안겼다.

활강 경기 도중 점프해 공중으로 도약한 폰알멘. AP=연합뉴스
폰알멘의 우승은 그의 인생 역정 스토리가 알려지며 더욱 주목 받았다. 로이터 통신은 “그가 가파르기로 악명 높은 스텔비오 슬로프를 매우 쉽게 내려온 것처럼 보이지만, 금메달에 이르는 과정에는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숨어 있다”면서 “스키 선수 이력을 이어가기 위해 수많은 난관을 거치고 올림픽 챔피언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그는 17세이던 2018년 비극적인 사고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아버지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잠시 스키를 그만둔 그는 목공 기술을 배워 목수로 취업했다. 가구, 목공예품 등을 제작하면서 틈틈이 공사 현장 인부로도 일했다.


하지만 선수의 꿈을 버리지 못해 힘겨워하는 상황을 지켜본 폰알멘의 친구들이 기적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나고 자란 스위스 베른 주의 작은 마을 볼티겐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전개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각종 대회 출전비용을 마련했다. 이후 4년여 동안 목수로 일하면서 틈틈이 훈련해 대회에 나서는 ‘이중생활’을 이어갔다. 인구 1000여 명에 불과한 볼티겐 마을 사람들은 폰알멘이 좋은 성적을 거둘 때마다 소식을 공유하며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레이스 직후 순위와 기록을 확인한 뒤 환호하는 폰알멘. EPA=연합뉴스
‘볼티겐 대표’라는 마음가짐으로 설원에 오른 폰알멘의 기량은 급성장했다. 1년 만인 2019년 스위스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됐고, 2022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활강 포함 은메달 3개를 거머쥐며 주목 받았다. 이듬해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무대에 데뷔한 그는 지난해 1월 수퍼대회전에서 우승하며 고대하던 월드컵 첫 금메달을 신고했다. 여세를 몰아 한 달 뒤 세계선수권대회 활강 종목을 제패해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랐다. 생애 처음 도전한 이번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목에 걸며 명실상부한 세계 1인자가 됐다.


우승 확정 직후 폰알멘은 “이 모든 상황이 영화처럼 느껴진다. 비현실적이다.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며 울먹였다. 이어 “금메달을 돌아가신 아버지께 바친다”면서 “내가 스키를 그만두려할 때 나를 믿어주고 돈까지 모아 준 내 고향 볼티겐의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내 금메달은 그들의 것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폰알멘은 “운동선수의 길은 험난하다. 언제든 다칠 수 있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겐 든든한 백업 플랜(목수 일)이 있다”고 덧붙여 마음을 비우고 도전한 게 성공의 비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올림픽 제패는 폰알멘에게 최고의 영예일 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안정감도 더해 줄 전망이다. 조국 스위스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 4만4000달러(약 645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그는 “힘든 시절이 있었지만, 내 인생에서 그 파트는 이제 지나간 것 같다”면서 “나는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마르코(오데마트)가 받는 관심이 부럽지 않다. 다음 주쯤엔 고향에 있는 작업실에서 친구들의 목공 작업을 도와주고 있을지 모르겠다”며 밝게 웃었다.



송지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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