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오는 6월까지 전쟁을 매듭짓자고 협상 시계를 재촉하는 와중에도 러시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러·우 3자 협상이 이뤄진 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에 대한 대규모 공습에 나서면서다. 러시아가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점을 노리고 전쟁 피로감을 끌어올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외교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폭력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같은 날 드론 400대 이상과 미사일 40여 발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한 데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러시아의 해당 공습으로 두 개의 화력발전소와 주요 변전소·송전망 등이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는 전국적으로 전력 제한에 들어갔다.
앞서 러시아는 이달 2~3일에도 에너지 인프라를 타격해 키이우와 히르키우의 난방을 끊었다. 추운 계절 난방과 전력을 끊는 이른바 겨울 무기화 전략을 거두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밖에 러시아는 6일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에 대한 드론 타격 등 일상적 타격도 이어갔다.
주목할 대목은 4~5일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미·러·우 3자 협상이 얼렸다는 점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협상 내용을 설명하는 담화에서 "미국이 올여름 시작 전까지 전쟁을 끝낼 것을 양측에 제안했다"며 "6월까지 종전을 위해 모든 것을 하기를 바란다면서 명확한 일정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국내 정치적 사안이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 그 비중이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협상에선 종전 합의를 3월에 타결하고 우크라이나 국민투표와 선거를 5월에 치르는 방안도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협상 후에도 러시아의 공습이 지속되면서 미국의 중재 노력이 무색해졌다. 러·우가 양측 157명씩 모두 314명 포로를 교환한 것 외에는 뚜렷한 성과가 없는 셈이다.
오히려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초조함을 협상 지렛대로 역이용하기 위해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실제 3자 협상에서 미국은 러시아에게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 자제를 요청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추위를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3자 협상을 지지하는 모두는 이에 대해 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도네츠크·루한스크 등 돈바스 영토와 자포리자 원전을 둘러싼 평행선도 해결될 기미가 없다. 러시아는 돈바스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점령하지 못한 땅까지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 명확하다. 러시아가 통제 중인 자포리자 원전의 경우 미국이 관리 역할을 맡겠다는 데 러시아는 반대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의 압력과 여러 차례 협상에도 불구, 외교적 노력은 지금껏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