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다. 전 세계인의 눈이 빙판과 설원을 향하고 있다. 미국 선수단은 다르다. 이들은 먼 타지 이탈리아에서도 TV에 시선이 향하고 있다.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미국프로풋볼(NFL) 수퍼보울(결승전)을 앞뒀기 때문이다.
제60회 수퍼보울은 9일 오전 8시 30분(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내셔널풋볼콘퍼런스(NFC) 1번 시드 시애틀 시호크스와 아메리칸풋볼콘퍼런스(AFC) 2번 시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맞붙는다. 11년 만의 리턴 매치다. 시애틀과 뉴잉글랜드는 2015년 제49회 수퍼보울에서도 맞붙었는데, 당시 시애틀은 경기 종료 직전 1야드를 남겨두고 러닝백에게 공을 주는 대신 패스를 선택했다가 뉴잉글랜드 코너백 맬컴 버틀러에게 인터셉션을 당해 다 잡았던 우승 트로피를 뉴잉글랜드에 내줬다. 이제 시애틀은 2014년 이후 역대 두 번째 수퍼보울 우승을, 레전드 쿼터백 톰 브래디(은퇴)를 앞세워 역대 최다인 수퍼보울 6회 우승을 일궜던 뉴잉글랜드는 6년 만의 왕좌 탈환에 도전한다.
동계올림픽 미국 선수단엔 NFL 광팬이거나 뉴잉글랜드 또는 시애틀 지역을 고향으로 둔 선수가 많다. 예년보다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이번 수퍼보울 '본방 사수'를 놓칠 리 없다. 문제는 시차다. 이번 수퍼보울은 이탈리아 현지시간으로 9일 오전 0시 30분에 킥오프한다. 다음 날 경기를 앞둔 선수들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취침해야 하는 시간이다. 미국 루지 국가대표 잭 디그레고리오는 대표적인 뉴잉글랜드 광팬이다. 매사추세츠주 출신인 그는 어머니가 구단 직원으로 20년 넘게 일했을 정도로 팀과 인연이 깊다. 디그레고리오는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자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난다면 슬쩍 경기를 틀어볼 수도 있다"며 본방 사수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미국 올림픽 대표팀에는 뉴잉글랜드의 연고지인 매사추세츠 출신이 15명, 시애틀의 연고지 워싱턴주 출신이 8명이나 포함돼 있다. 미국 컬링 국가대표 코리 드롭킨은 "경기가 너무 늦어서 보지는 못하겠지만, 뉴잉글랜드 유니폼을 입고 자면서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찰리 매커보이는 "차라리 일찍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 후반전을 보는 방법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수퍼보울과 동계올림픽 일정이 겹치는 것은 2022년 베이징 대회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과거보다 NFL 정규시즌 일정이 길어지면서다. 거대 스포츠 이벤트의 충돌에 대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고민에 빠졌다. 커스티 코번트리 IOC 위원장은 "대형 이벤트들이 서로 겹치고 있다"면서 "이제는 스포츠계가 하나의 가족으로서 어떻게 일정을 조율하고 서로 경쟁하지 않을지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동계올림픽 선수들을 애태우는 올해 수퍼보울 우승은 쿼터백 대결에서 갈릴 전망이다. 시애틀을 이끄는 '인생 역전'의 아이콘 샘 다널드(29)는 정규시즌 4200야드 패싱과 35개의 터치다운으로 팀을 NFC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다널드에서 잭슨 스미스은지그바로 이어지는 쿼터백-와이드 리시버 호흡은 리그 최강 수준이다. 프로 8년 차 다널드는 2018년 큰 기대를 모으며 NFL에 입성한 신인이었다. 하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과거 뉴욕 제츠와 캐롤라이나 팬서스 등에서 실패한 유망주 취급을 받았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미네소타 바이킹스 등 지난 시즌까지 7년간 네 팀을 전전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시애틀 유니폼으로 갈아 입으면서 기량이 만개했다.
반면 뉴잉글랜드는 2년 차 신예 쿼터백 드레이크 메이(24)의 패기에 기대를 건다. 메이는 톰 브래디 이후 오랫동안 쿼터백 부재에 시달리던 뉴잉글랜드의 차세대 '중원 사령관'이다. 그는 큰 키(1m93㎝)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어깨와 침착한 경기 운영 능력으로 팀의 정규시즌 14승을 견인했다. 간판 러닝백 라몬드레 스티븐슨이 평소 컨디션만 유지한다면, 메이의 유일한 약점인 경험 부족도 메워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지 도박사들과 외신은 시애틀의 우세를 점친다. 시저스 스포츠북은 시애틀의 승리 배당률을 -200(100달러를 따려면 200달러를 걸어야 함)으로, 뉴잉글랜드는 +170(100달러를 걸면 170달러를 따 총 270달러를 받음)으로 책정했다. 또 핸디캡 베팅에서는 시애틀이 4.5점 차로 앞설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이 시애틀의 4~5점 차 승리를 예상한다는 의미다.
수퍼보울의 경제 효과도 천문학적이다. 미국 언론은 이번 수퍼보울이 개최지인 샌타클래라와 인근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약 5억 달러(7300억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추산했다. TV 광고 단가 역시 역대 최고가를 경신해, 30초당 광고비가 800만 달러(116억원)에 육박한다. 1967년 1회 수퍼보울 광고 비용인 3만7500달러(5400만원)의 213배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일부 브랜드는 1000만 달러(145억원) 이상 지불해 '천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평균 티켓 가격은 현재 4500달러(650만원)다. 경기 만큼이나 인기를 끄는 하프타임 쇼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세계적인 라틴 팝 스타 배드 버니가 나선다. 버니는 지난 2일 열린 제68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라틴 가수 최초로 '올해의 앨범'을 거머쥔 수퍼스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퍼보울을 관전할 지도 관심사다.